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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Dec 17. 2020

달과 해변


내 손에는 여러 개의 달이 얹혀 있습니다.

열 개의 상현달이 열 개의 손가락에

가지런히 박혀 있습니다.

조금씩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릅니다.

자고 일어나서 씻고 두 손을 마주하면

앙증맞은 달들은 밤새 자라 있습니다.

어린 달들은 간밤에 하늘로 올라가 엄마 달의

젖을 먹고 새벽까지 은하수 사이를

쏘다니다가 내려온 얼굴입니다.

그리곤 자기들만의 비밀을 간직한 듯

배시시 웃습니다.

내 손에는 여러 개의 해변이 생겨 있습니다.

열 개의 해변이 열 개의 손가락에서

모래톱을 키웁니다.

저녁에 살펴보면 단정하던 해안에

한낮의 파도 자국이 선명합니다.

검은 해초와 조개껍질이 밀려오고

흰 거품도 흔적을 남깁니다.

해변은 하루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모래알마다 장면을 새겨 넣습니다. 

해변은 기억을 새기고 기억은 자라서

밤의 꿈으로 항해합니다.

내 손 끝에는 여러 개의 싹이 자랍니다.

열 개의 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계절 쉬지 않고 자랍니다.

험한 일로 상처를 입어도 묵묵히 자라납니다.

한때 심한 열병을 앓은 후에

싹들에 대한 고마움을 얻었습니다.

비좁은 병상은 머리카락과 손톱의

자람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싹들은 창백한 얼굴로 침상을

둘러앉아서 빈 병실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자라남도 멈추눈으로 지켜보며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 손 끝에는 여러 개의 줄이 매여 있습니다.

열 개의 현이 열 손가락에 달려 있습니다.

각기 다른 길이로 다른 음색을 짚어냅니다.

나의 안색을 살피어 그날그날 곡조를 달리합니다. 둥기당당 가야금이 되었다가,

아쿠아틱 기타가 되어 로망스를 노래하다가, 피아노의 건반이 되어 쇼팽의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때론 바람만 스쳐도 기다렸다는 듯 줄이 울립니다.

매일 달이 조금씩 차오름은 살아있음의 징표입니다.
매일 파도가 왕래함은 존재의 떨리는 율조입니다.
매일 싹이 자람은 생의 의지가 발현됨입니다.
매일 현을 고름은 아직 노래할 날들이 남았음입니다.

이것이
내가
아침마다
거친 손을 쓰다듬으며
경의를 표하는 이유입니다.

 폭풍우 같은 긴 밤을 건너와

해맑은 얼굴로

웃는 그대 

두 손.



(손톱을 정리할 때마다 살짝 귀찮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신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한 결과임을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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