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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an 01. 2021

내 안의 슬픔들

백석, 윤동주, 기형도


백석 시인은 사랑을 잃고 썼다.

미완의 사랑은 가난을 만나 시를 낳았다.

그리고 시는 끝내 쓸쓸함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



백석의 하얀 외로움을 사랑한

동주 시인은 지상에서

예수보다도 짧은 생을 보냈다.

그가 이고 섰던 하늘에는

종달새만 명랑히 울어댔다.


종달새는 이른 봄날
         ..........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오늘도 구멍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길로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종달새'중)



형도 시인은 기어이 집을 나섰다.

사랑이 떠나간 집은 무덤보다도 어두웠다.

그리하여 동주 형과 생의 길이를 같이 했다.

그러나 작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빈집'중)



마지막 밤이 깊었지만

별은 낡은 시집에서만 빛났다.

창백한 별빛을 따라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자욱한 안개가 모든 풍경을 지워냈다.

그렇게

슬픔도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뼈처럼 단단한 슬픔은

발아래에서 아프도록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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