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은 지난 계절부터 서성이기 시작했다
강 위에 비친 산 그림자 여위어가고
소슬바람이 나뭇잎마저 쓸어가면
물살은 더 이상 품어낼 것이 없었다
저녁 하늘에 조각달이 실눈을 뜨면
강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밤이 깊을수록 여울소리 커지고
언덕 위 버드나무는 성긴 머리칼을 흔들었다
수초들은 안간힘을 다해 강바닥을 움켜쥐고
어린 물고기들은 살얼음 아래로 몸을 숨겼다
시베리아의 매서운 바람이 쏟아지던 날
철새들은 단검처럼 날아와 박히고
강물은 새들의 부리짓에 움찔거리며 흘러갔다
겨울을 건너는 강은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밤하늘의 별자리가 바뀌면
눈발 날리는 풍경조차 사라지게 될 것을
수초 뿌리, 물벌레로 살이 오른
북방 나그네들이 일제히 떠나가면
한 철 연정만이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을
새벽 빈 강은 알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