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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이야기 Aug 15. 2021

환상의 여왕

눈의 여왕, 카이의 환상의 왕국, 게르다의 침투

“침입자 발견! 10km 앞까지 접근했습니다.”


감시 로봇으로부터 경고음이 울렸다. 카이는 서둘러 얼음 방으로 향 했다.

얼음 방에는 주변을 볼 수 있는 큰 화면이 있었다. 침입자는 이상한 짐승을 타고 빠른 속도로 눈의 왕국에 접근하고 있었다. 카이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곳 눈의 왕국에 누군가 침입해 오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눈의 왕국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는 눈의 여왕이 다스리는 눈의 왕국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카이는 이곳은 상상의 왕국이라 불렀다. 카이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얼음조각 조립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카이가 상상하는 것들을, 얼음조각으로 조립만 하면, 곧바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이 됐다.

완성된 얼음조각은 보석처럼 빛이 났고, 보석 그 자체로 완성이 됐다.

카이가 이곳에 와서 얼음조각들을 조립해 제일 먼저 만든 것은 자신만의 방이었다. 

그 방은 보석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독립 공간이었다. 

카이는 이어서 보석으로 만들어진 변신로봇, 게임기, 멍멍이를 차례로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카이의 상상력은 더더욱 파격적으로 편해갔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나는 대로 조립하고, 창조해 갔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은 만들어도. 금방 싫증이 났다. 만족하지 못했다.

이럴 땐 방법이 있었다. 완성품을 다시 얼음에 던져버리면 됐다. 

보석으로 된 완성품을 다시 얼음에 던지면, 완성품은 다시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때문에 카이의 환상의 왕국에는 쓰레기가 없었고, 언제나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왕국은 정리정돈돼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눈의 여왕이 만든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눈의 여왕은 환상의 왕국의 주인이었다.

그는 눈으로 왕국을 직접 만들었고, 카이를 이곳으로 직접 데려온 장본이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고, 모험심이 많았던 카이는 마을 광장에서 눈의 여왕을 만났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마을에서는 썰매 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눈의 여왕은 마을의 축제가 끝날 때쯤, 얼음으로 만든 화려한 보석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여왕은 축제기간 동안 사람들이 먹고 마시던 쓰레기를 주워 모아서, 마차에 실어 날랐다.

쓰레기들 중에서도 특히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워 모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주 많았기에, 여왕의 마차는 금방 찼다. 

카이는 몹시 궁금했다. 여왕은 저 플라스틱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이 카이가 눈의 여왕의 왕국에 처음 들어온 이유였다.

여왕은 모아 온 플라스틱을 이용해 얼음을 만들었다. 카이는 그 광경이 너무 신기하고 매력적이어서, 이곳에 남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카이는 매일매일이 즐거웠었다.

규칙을 어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왕이 정한 규칙은 간단했다. 정리정돈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리는 것이었다. 

여왕이 정한 그 간단한 규칙만 지켜준다면, 모든 게 완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이유도 그 간단한 규칙을 한번 어겼을 때였다.


한 번은 카이가 싫증난 완성품을 파괴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외출에서 돌아온 눈의 여왕이 보게 된 것이다. 

여왕은 카이의 목을 움켜쥐고 하늘로 들어 올려 버렸다. 그리고 그를 노려봤다.

카이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카이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추위였다.

추위로 인한 고통은, 여왕의 엄포 때문에 더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한 번만 더 어질러 놓으면, 저기 저 얼음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그것은 단순한 엄포가 아님을 카이는 직감했다. 카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의 여왕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카이 자신도, 자신이 파괴시킨 싫증난 완성품처럼, 똑같이 파괴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카이의 모든 상상에는 여왕이 있었다. 정확히는 여왕의 그림자가 되는 상상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파괴되지 않고,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카이는 감시로봇을 만들었던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여왕이 귀환 시간을 미리 알기 위함이었다.


침입자를 포착했던, 감시로봇의 긴급 알림 메시지가 다시 크게 울렸다. 

“5km 남았습니다.”

“띠 쓰레기 감지. 오염물 감지”

카이는 곳 바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마스크를 쓴 침입자와 짐승은 오물에 젖어있었다.

화면을 확대하자 그것은 인간이었다. 짐승을 타고 있었고, 전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카이는 서둘러 나머지 감시로봇을 출동시켰다. 침입자를 막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눈의 왕국은 오염이 안 된 곳이다. 오염이 안돼서 환상의 왕국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의 왕국은 비밀스러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됐다.

가장 큰 이유는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외부인에게는 바이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바이러스라도, 이곳에 침투한다면, 왕국 전체가 오염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무엇보다 외출 나간 여왕이 돌아와 그 상황을 본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카이는 급하게 얼음조각을 주웠다. 그리고 무기를 장착한 공격용 변신 로봇을 조립했다.

카이가 완성품을 출격시키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짐승을 탄 인간이 들이닥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염이 심했다. 카이가 피할 틈도 없이 침입자는 내 손을 잡아버렸다.

“카이! 카이로구나! 카이가 맞았어!”

여자 아이였다. 마스크를 벗은 인간은 카이 또래의 여자였다. 타고 온 짐승은 순록이었다.

카이가 변신로봇에게 공격명령을 하려고 한 순간 그녀는 카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카이는 순간 너무 놀라 여자에게 크게 소리쳤다.

“놔! 당장 떨어지지 못해! 이 바이러스 같으니라고!”

“카이! 나야 게르다. 왜 나를 몰라봐! 난 널 한 시도 잊은 적 없어!”

그녀는 카이에게 손에 들고 있던 장미꽃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카이는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게르다는 카이의 얼굴을 끌어안고 울음이 터졌다. 

게르다의 눈물은 카이의 이마를 타고, 카이의 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카이의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뜨거움은 눈 신경을 타고, 뇌로 침투했다.

카이는 머리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뜨거움은 조금씩 식어 내리며 가슴으로 타고 들어갔다.

가슴이 따뜻함으로 채워졌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가 빠져나가듯 시원함이 밀려왔다.

카이는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끌어안고 있는 게르다를 알아봤다.


서로 지붕이 마주 보이는 다락방을 통해, 함께 장미를 가꾸며 놀던 단짝 친구 게르다였다. 

“우선 빨리 이곳부터 빠져나가자”

게르다는 카이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하지만 카이는 게르다의 손을 뿌리쳤다.

“안 돼! 난 눈의 여왕을 기다려야 해”

“여왕을 기다린다고! 제정신이야?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벗어날 수 있어!”

“탈출?”

순간 카이는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짜릿함을 느끼며 정신이 버쩍 들었다.

‘탈출’이라는 단어는, 카이가 환상의 왕국에서 지내면서 잃어버린 언어였기 때문이다.

눈의 여왕이 두려워, 감시로봇을 만들었지만, 한 번도 그곳을 탈출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게르다와 카이를 등에 태운 짐승은 기다렸다는 듯 앞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카이는 눈의 왕국을 탈출하는 순록의 등에서, 환상의 왕국을 추억했다.

그래서 뒤돌아 봤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던 환상의 왕국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그러나 왕국은 보이지 않았다. 보석처럼 빛나던 눈의 왕국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쓰레기로 뒤 덥힌 거대한 쓰레기 산이, 왕국이 있던 자리에 서 있었다.

“사……. 사라졌어.......... 나의 왕국이........”

카이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자신이 떠나온 자리를 보며, 게르다에게 말을 건넸다.

“환상의 왕국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았어. 처음부터 없었을 뿐이야”

카이는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보석처럼 빛나던 눈의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카이는 생각했다. 자신은 꿈을 꾸고 있으며, 게르다와 순록이 가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순록이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리곤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마치 카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순록은 빠져나왔던 길을 향해 다시 내달렸다.

쓰레기 산에 가까이 다다를수록 안개처럼 희뿌연 가루들이 눈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플라스틱 조각들이었다. 

쓰레기 산은 대부분은 사람들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산이었다. 

눈처럼 내리는 가루는 오래된 플라스틱이 발에 밟힌 과자처럼 부서진 조각들이라고 했다.

그제야 게르다와 순록이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 이 플라스틱 가루 때문이야!” 

눈과그랬다. 플라스틱 가루가 카이의 눈 과 코를 통해, 그의 뇌 속에 침투했기 때문이었다.

카이의 뇌는 플라스틱에 정복당한 체 가루를 눈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얼음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었다. 얼음에 던지면 사라진다고 믿었던 얼음조각 또한 플라스틱들이었고, 던져진 플라스틱 조각들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산처럼 싸여가고만 있었다.

그렇게 플라스틱들은 지구를 삼키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눈의 여왕은 플라스틱이 뇌에 침투당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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