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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중고 직거래

안 쓰는 물건 꺼내고 잠시 지난 꿈을 떠올리기

by 이차람

퇴사전


웹툰 배워서 '직장인 웹툰'을 그려서 대박 나면 회사를 그만두리 다짐하며 와콤 650 모델로 구입했다. 학원 알아보는 것도 일이고 주말반 등록하고 또 못 가서 죄책감 느낄 게 뻔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추야 작가님한테 '원데이 수업'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을 2~3명 모았고 연남동의 한 서점의 배려로 공간도 얻었다. 수업은 참 좋았으나 태블릿이란 걸 처음 써보는 데다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좀 어려웠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게 더 빠를 정도. 게다가 스킬보다는 어떤 내용과 스타일로 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직장인의 점심메뉴' '여자는 나이 서른에 정해지는 거 하나도 없다' 뭐 이런 주제들은 어떨까 생각하다가, 태블릿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 웹툰 작가로의 데뷔는 언제?





퇴사후


웹툰 수업을 같이 들었던 언니가 태블릿 잘 쓰고 있냐고 연락이 왔다. 그 연락이 오기 전까지 태블릿을 잊고 있었다. 아,,, 나는 뼛속까지 아날로그적인 사람임을 깨달았다. 생각난 김에 중고 카페에 글을 올렸다. '와콤 풀박스 팝니다'라고 올리자마자 5분도 안 되어 두 명에게 연락이 왔고 다음날 직거래로 연결되었다. 태블릿을 들고 서울역에 서 있는데 다소 다크서클 짙은 훈남이 내게 인사를 했다. (중고 직거래 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다!) 그렇게 내 손에서 떠나간 태블릿. 뭔가 내 속이 다 시원했다. 나는 지금 푹 빠진 순수미술 분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꿈 정리를 하니 물건도 정리하게 되고, 심플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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