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mbti 보고 오셨어요?

Chararri story

by 차라리

Chararri story #2


“MBTI가 어떻게 되세요?”

힘없이 걷던 퇴근길에 누군가 질문한다

거기에 “저는 xxxx요.” 하고 대답하면,

다들 어디선가 주워들은 MBTI별 특징 같은 것들을 말하면서 그 사람의 본 적도 없는 모습들을 MBTI에 기대어 추측한다


어느 집단이든, 어떤 자리든 할 말이 슬슬 떨어진다 싶을 때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 명쯤은 MBTI 얘기를꺼낸다 서로에게 그다지 조심스러울 필요도 없는 주제이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다 하물며 어느 정도

신빙성도 있다는데,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이쯤 되면 MBTI가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도대체 무슨 말로 어색함을 깨고 대화를 이어나갔던건지 가물가물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술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 혈액형 얘기라도 했던가?

정말로 그렇진 않았을 텐데


최근에 만난 지인은, 꽤 오래 다닌 회사에서 퇴사한 뒤 본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알바 면접을 몇 군데봤다고 한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나왔던 질문은

“MBTI가 어떻게 되세요?”였다고 한다


I와 E가 50:50으로 나온다는 그 지인은 눈알을 몇 번 굴려본 뒤, 사장의 성향이 어떤지, 가게의 인테리어는 어떤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게 최선일지까지 생각해서 그에 맞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시대다


SNS를 잠깐만 둘러봐도

MBTI별 특징, MBTI 궁합, MBTI별 공감 능력…

이런 종류의 게시물들이 차고 넘친다

한국에 이렇게 심리학 척척박사들이 많은 줄은 최근에야 알았다 어떻게들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지, 가끔

부럽기까지 하다 아니, 정말로


하긴 본인 소개란 이름 옆에 MBTI 네 글자를 적어두는 시대에,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MBTI 기본 상식 정도는 알고 살아야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전에 본인과 상극이라는 MBTI를 가진 분과

꽤 오래 붙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MBTI가 아니더라도 성향이 다르다는 건

본인도, 그쪽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이 지내는 게 좋았고 즐거웠기에,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이름 모를 사이트에서 하는 MBTI 궁합이니,

MBTI 박사님들이 업로드한 게시물들에선

우리는 늘 상극, 그리고 최악의 궁합이었다

정작 우리는 잘 지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은 편히 볼 수 없는 사이가 됐지만,

아직도 MBTI가 상극이라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그게 맞고,

“그렇게 될 MBTI였다…”라고까지 얘기가 흘러간다면,

나는 오늘부터 MBTI 성형외과를 차릴 꿈을 키워볼 예정이다


잡아먹힐 듯한 커다란 의자에 앉아,

“어떤 MBTI 보고 오셨어요?”

하고 묻는 의사 가운의 나

꽤 근사하지 않나


다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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