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정의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내가 가장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질문은 ‘좋아하는 색은? 혹은 좋아하는 노래는?’ 따위의 취향이나 성향을 한 가지로 간결하게 답해야 하는 것들이다. 나는 변덕스럽고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며 귀가 얇아 내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정의할만한 취향이나 선호를 갖지 못했다. 또한 수시로 변하는 감정에 휘둘리며 양면적이고 모순적이기도 하다.
짧지 않은 날을 살아왔으나 아직까지도 나 자신을 내가 제일 모르고 있다. 나이나 직업, 성별 따위는 나의 외피일 뿐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다. 되짚어보면 ‘나는 누구이며 어디를 향해 가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진지하고 끈질기게 하지 않았던 듯 싶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판을 의식하고, 감정이나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을 머뭇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진심으로 바라고 느끼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나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이제는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돌려 오래오래 자신을 응시하고자 한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선뜻 소개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들여 읽고 쓰며 마음을 들여다보고 하나씩 하나씩 꺼내 봐야겠다. 그것은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일 수도 있고,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유치한 시샘이나 질투일 수도 있으며, 표출하지 못한 분노일 수도 있다. 울퉁불퉁하고 밉상인 치부까지도 하나하나 서서히 끄집어내어 햇볕도 쬐게 하고 바람도 쐬게 하며 나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 어쩌면 그 속에는 갓난아기 발바닥처럼 여리고 말랑말랑한 진심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