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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Jan 19. 2021

그래도 술은 함께 마셔야 제맛

  엄마가 초보라는 것은 아이들이 먼저 안다. 아이를 돌보는 서툰 엄마의 손길이 마땅치가 않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소독해야 할 젖병에, 빨아야 할 기저귀에 일거리가 산더민데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별수 없이 아기 띠를 하고 싱크대 앞에 선다. 키가 작은 나는 아이가 앞에 있으니 최대한 엉덩이를 빼고 일을 해보지만 아이 머리와 몸은 온통 젖는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업어보려고 포대기를 찾아본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등으로 잘만 넘겨 업고 포대기를 쉽게 하드만 나는 도무지 잘되지 않는다. 아이를 떨어뜨릴 것 같아 침대에 눕히고 침대 높이만큼 무릎을 구부리고 몸을 숙인다. 아이를 옆구리 쪽으로 끌어올려 업으려는 계산이었는데 서툴러서 떨어뜨리고 만다. 놀라서 울어대는 아이 옆에서 기어이 나도 울음을 터뜨린다. 




  한밤중에 열이 오르고 계속 토하는 아이를 들쳐업고 정신없이 응급실을 찾는 일도 있다. 몸이 축 늘어진 아이를 업고 서서 아무리 손을 들어도 지나쳐가는 택시는 야속하기만 하다. 조그만 발등에 주삿바늘을 꽂고 나면 차라리 내 몸에 수백 군데 바늘을 찌르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불덩어리인 아이의 몸보다 지켜보느라 타들어 가는 어미의 마음이 더 뜨겁다.




    깊이 잠든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하루가 끝난다. 혼자 자식을 키우는 일은 서러울 때도 많고 울 일도 많다. 그런 날 밤엔 사람의 온기 없는 식탁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신다. 눈물 섞인 술은 쓰디쓰고, 말할 상대 없이 혼자 따라 마시는 술은 어느결에 올라 아이 옆에 지친 몸을 누이면 이내 잠이 든다. 우울감도 속상함도 잊으려고 술을 마시지만, 술에 취한다고 해서 공연히 한 번씩 서글퍼지는 마음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말로 풀어내서 휘발시켰어야 할 감정들은 풀리지 못한 채 응어리져 마음 깊은 곳에서 날마다 더욱 딱딱하게 굳어간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혼자 하기엔 너무 버겁고 서글픈 일이다. 




   서툴게 키워낸 아이는 어느새 자라 함께 술잔을 부딪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막막하고 두렵던 날들, 세상에 혼자인 듯한 외로움에 온몸이 시리던 날들을 견딜 수 있던 것은 아이가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이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고비를 만나겠지만 지금껏 그랬듯 견뎌낼 것이고, 오늘 몰아치는 거센 바람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부족한 어미 밑에서 기특하게도 잘 자라 준 아이와 나누는 술맛은 쓰지 않다. 벚꽃이 휘날려서, 비가 와서, 단풍이 들어서 우리는 함께 술을 마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역시 술은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과 마셔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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