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미술을 배우러 간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미술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내가 미술 수업을 받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쉬어 본 적 없이 출근했다. 아이를 낳은 후의 2개월 출산 휴가가 직장을 떠나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이 아빠가 양육비조차 내놓지 않아 아이와 둘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만 했다. 넉넉지 않은 수입으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나를 위해 지출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생은 돈과 인연이 없는 건지 쉽게 모여지지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 조금 모았다 싶으면 큰돈 들어갈 일은 기가 막히게 때맞춰서 찾아왔다.
한 부모 가정의 아이라고 남들 앞에서 기죽지 않으려면 돈이라도 넉넉하면 좋으련만 늘 쪼들리는 엄마는 언제나 손이 작은 사람이었다. 풍족하게 먹여보지도 못하고, 하고 싶다는 것 원 없이 시켜보지도 못했는데 고맙게도 잘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사이 나도 나이를 먹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정도의 여유가 간신히 생겼다. 비싼 옷에, 명품 가방에 돈을 척척 쓸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이겠지만, 취미생활도 하고,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을 만큼은 살게 되었다. 아이가 어려 교육비가 많이 들어갈 때는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돈이 없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친구들을 만나면 밥값, 커피값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핑계를 대며 친구들 모임에도 빠지곤 했었다.
다 자란 아이는 이제 내 손길을 필요치 않게 되고, 내게는 잉여의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늘 바쁘게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시간의 여유가 주어지자 마땅히 시간을 때울 만한 것이 없었다. 이웃 사람들과 말을 섞기도 어색하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주변에서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았다. 돈을 들여 뭐라도 배워 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얀색으로 ‘미술’이라고만 쓰여있는 간판을 매달고 있는 그곳은 주의 깊게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특색도 없고 드나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날 어떻게 그 간판이 눈에 들어왔는지, 무슨 생각으로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에 홀린 듯 충동적으로 등록을 하고, 그날부터 나는 미술학원의 수강생이 되었다. 처음으로 오직 나만을 위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돈을 지불한 것이다.
그저 노트만한 크기의 도화지에 그리고 싶은 사물들을 스케치하고 물감으로 칠하는 게 전부지만 그곳에 있는 시간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그곳에서는 OO 엄마도 아니고, OO 부장도 아니다. 선생님이 손을 잡고 스케치를 도와주거나, 그림을 들여다보며 조언을 해줄 때면 열 몇 살의 학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솔직히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다. 첫날은 기둥 몇 개를 스케치했는데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진하고 두꺼워져 아무리 지워도 연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솜씨가 하루아침에 느는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서툴고 조잡하기 짝이 없지만, 그림을 완성하는 날은 스스로가 대견하다.
미술을 배우러 가는 날이면 나는 잔뜩 들떠서 집을 나선다. 단순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을 깨달아가는 이런 시간이 소중하다. 이번 한 해도 오래도록 모르고 살았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탐구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부지런히 하려 한다. 나를 꾸밀 여유 없이 살아오는 동안 비록 입가와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잡혔지만, 마음의 주름살만은 팽팽하게 당겨서 젊은 생각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