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참지 않고 쏟아내면 후련한

오늘의 [마음] 차림식 : 의연함을 차리다

by 차림식



쏟아내면 후련한 것들이 있다. 나에겐 눈물이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혼이 나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친구가 울면 따라 울는 울보.

지금 생각해 보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이 서툴어 눈물로 마음을 뱉어냈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과 함께 열이면 열이 모두 슬퍼한다는

드라마를 보았다.


지금이다 싶은 타이밍에 눈물이 바로 올라왔다.

얼마만의 눈물인지. 반갑지만 닦아야 하기에 휴지를 꼭 쥐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끔뻑거리며 휴지를 써보려 해도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마치 건조한 눈에 단비 같은 정도로 고여있을 뿐이다.



눈물이 가물었다.

우리에게 인류애가 부족한 것인가? 공감 영역이 달라진 것인가? 남들이 슬프다는 부분이 우리도 슬프긴 했는데.


토론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소위 요즘 말로 ‘쌉 T’가 되었음을 인정하자였다.



그 시절에는 눈물로만 마음을 표현하던

극 공감형 인간이 어떻게 대문자 T가 된 건지.


계기랄 건 없지만 아마도 의연하려 했던 마음이 나를 변화시키지 않았을까.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며 부모가 되었다.

자연히 나에게도 일련의 인류보편적인 일들이 닥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의연하게 대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마음의 중심을 찾는 사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래 보였다.


얼마 전 내게도 인류보편적인 일들이 찾아왔다.

다만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왔기에 하는 수 없이 내 안의 바닥을 몽땅 드러내야만 했다.

나를 몰래 미워하는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게 아닐까 싶게, 뾰족한 말과 날카로운 상황들은 마음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상처를 내고 구멍을 내었다.



하나 둘 생겨난 구멍은 서로 붙어먹고 끝도 없는 더 깊은 구멍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러다 구멍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게 될까 두려워졌다.

마음을 기워야만 했다.



듬성듬성 누더기 된 마음을 기우면서 많이 울었다.

무엇으로 메꿔야 할지 몰라 우선 대충 조각을 붙여놓고 그저 울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 그 중간 높이 어딘가에 걸쳐있어 말로 표현하기 성가셔서 묻어뒀던 마음을 눈물로 쏟아냈다.



일주일은 그랬다. 그리고 이제는 이 모든 일들에 조금은 의연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눈물로 조각을 기워내며

저 아득한 곳에 감춰두고 모른 척 지냈던 감정들을

꺼내어 마주하게 되었고,

내가 가장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환희하는 지점도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서 의연한 게 아니었다.



감정의 바닥을 직면했기에,

고조와 침잠 사이 어딘가에 내 마음을 놓아둘 자리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뿐이었다.

감정이 머물게 할 적당한 마음의 자리를 찾는 것이 의연함임을,

나를 심연 속으로 몰아넣을 만큼 혹독해야만 가질 수 있는 태도임을 알았다.




구태여 의연하게 행동할 필요가 뭐가 있나 싶다.

눈물이 나면 참긴 뭘 참나. 엉엉 울고 후련해지면 된다. 애엄마여도, 아빠여도, 노인이어도 상관없다. 그저 눈물이 나면 쏟아내고 훌훌 털어버리면 될 것을.



아이처럼 꺽꺽 울고 나면,

마음에 절로 의연함이 차려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냉장고를 비웠는데 내가 보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