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관계] 차림식 : 아이와 부모의 좋은 관계
아이를 낳는 건
온전히 나의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질 일이라고 여겼다.
설령 후회하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선택’이라는 말속에는
아이를 갖기 어려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회피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예감도 있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할 때 느낄 회한은
그 누구도 달래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내가 벌써부터 안쓰러웠다.
역시나 아이는 금방 찾아오지 않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믿었던 일들은
어느 순간 ‘감히’로 바뀌었다.
“내가 뭐라고. 내가 감히.”
과거의 나는 오만했고,
덕분에 나는 더 깊은 겸손으로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세상에 초대하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남편에 대한 믿음이 컸다.
늘 자기 확신이 강한 편이었는데,
그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면 볼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흐려졌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아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가 믿음을 줄수록,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강인함보다 온화함을 갖추고 싶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부모가 된다.”
‘좋다’는 말은 주관적이고 애매하다.
그래서 나와 남편만의 기준으로
‘좋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좋은 부모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길을 찾으려 했다.
우리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기 전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좋다.
겸손하게 자기 속을 들여다보고,
담백하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여유는 신뢰에서 나오고,
신뢰는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보채거나 조급하기보다는,
상대를 믿고, 자신을 믿는 사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이뤄내는 사람.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청할 줄 알고,
받은 도움에 감사하고,
받은 만큼 또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물론, 이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지
겨우 3년 반이라 그 결심은 바늘구멍만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귀한 매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 애쓴다. 미래의 내가 그리워할 지금에 후회는 옅게 남기고 싶다.
무엇보다도 ‘희생‘하는 관계를 경계하고 있다.
아이를 위해 온전히 희생하는 부모는 되지 않으려 한다.
희생하는 순간 보상심리가 생길까, 건강한 사랑 이상으로 아이에게 많은 걸 기대하게 될까 봐 두렵다.
오늘은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급하게 하원을 하러 간 엄마를 알아챘는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말해주었다.
너무 급하거나 빠르지 않아도 되니 천천히 오면 된다며. 자기는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어쩌면
아이가 먼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