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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분 서양사

민주주의 마케팅: 이상에서 현실로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세부 내용 소개 II

by 샤를마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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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여러분은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으로 이상을 실현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 세상은 이상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상이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면 그저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고 고민하여 이상을 녹여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비록 그 결과가 기존의 이상과는 다르더라도, 이상의 일부가 실현되었다면 괜찮은 성과입니다.

민주주의는 현실과 타협해야 됐습니다. 앞선 두 글에서 봤듯이,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혐오되어 온 대상이고, 엘리트층(지식인)은 어떻게든 민주주의의 현실화를 억제하려 했습니다. 사상 등 내적으로 '성숙된 근대'에 이르러서도 민주주의가 현실화될 가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대적 사고'의 씨앗을 만들고 발아시킨 계몽사상가들도,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미국에서조차 민주주의를 위험한 대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시민 혁명의 모태인 프랑스 혁명도 민주주의를 목표로 발생한 게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뿌리 깊은 혐오를 없애야 하고, 그러려면 민주주의가 위험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현실적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18세기 서양의 역사관에서 고대 그리스의 민주국가들은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투사들의 세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이 민주정은 세련된 유럽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략)… 이런 사고방식은 당시에 널리 공유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그 생명이 끝난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론의 다수파는 미국에 민주정이 수립되면 민중이 신뢰하는 소수의 선동가가 득세해서 평화, 안전, 재산권을 파괴하고 신생 국가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결국 미국 헌법은 선출된 엘리트, 즉 대표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고 중앙정부를 강화하는 공화정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었다.

혁명가들은 프랑스에 민주정을 수립하려는 의도를 갖고 혁명을 일으키거나 지도한 것이 아니었다.

-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창비, 2023, pp.111-112, 121, 123.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콩도르세는 민주주의를 현실화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룰 때, 그는 '그렇지 않다'라는 비주류를 선택했습니다. 보통 비주류는 주류에 밀려 현실에서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는 18세기 '생각의 주류'인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로 손꼽히던 볼테르(Voltaire, 1694~1778)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고, 『볼테르의 삶』이라는 책까지 쓴 것이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책의 p.139). 볼테르는 민주주의를 반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콩도르세는 볼테르를 스승처럼 따랐지만, 스승의 생각까지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적절한 조정'을 거치면 실현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지식은 그대로 전승되기도 하지만,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을 개척하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계몽사상은 인간의 이성과 각종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는 진보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전제로 삼습니다. 그 전제대로라면, 콩도르세는 누구보다 계몽사상의 정신에 부합하는 사람입니다.

볼테르: 민주정은 스위스의 작은 주나 제네바에서만 적합하다.

볼테르의 주장에 대한 콩도르세의 각주:
민주정이라는 단어를 시민이 직접 총회에 모여 법을 만드는 아테네의 제도로 이해하지 않고, 모든 시민이 대표를 선출하여 그들이 전국을 대표하는 의회에서 유권자들의 의지의 보편적 표현을 대변하고 전달하도록 하는 제도로 이해한다면, 민주주의는 심지어 가장 큰 제국들에도 적합할 수 있다.

- 위의 책, pp.139-140.

'큰 철학'에는 '작은 실천 방법'들이 집합할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 말은 어떤 주장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 주장을 실천하는 방법들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콩도르세는 민주주의의 현실화라는 큰 철학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현실적으로, 체계적으로 설정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형은 변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콩도르세는 민주주의가 현실화되긴 위해서는 공화주의적인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를 근대식으로, 현실에 맞게 바꾼 결과물입니다. 민주주의의 원형은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직접민주주의를 지탄해왔습니다. 근대의 관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이룰 수 없는 이상'에 불과했습니다. 근대 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국가 운영에 일일이 관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요. 콩도르세는 그 점을 인식하고 '현실의 틀에 맞는' 민주주의를 표방해야 방법론이 따라온다고 본 것입니다.

'인민의 무지함'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지 못한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역사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와 같은 큰 조직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는 엘리트입니다. 그러므로 엘리트의 목소리가 곧 세상의 목소리가 되기 마련입니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는, '풍랑이 드세고 암초가 널린 바다에 큰 배를 단 한 번도 몬 적이 없는 사람에게 선장을 시키는' 자멸의 행위와도 같았던 겁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현실화를 위해서 '인민은 무지하지 않고, 오히려 엘리트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납득 가능한 반론을 제시하는 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는 언뜻 보면 인민이 엘리트에게 국가 운영권을 전적으로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에서 국가 운영권을 행사하는 세력은 전적으로 '인민의 결정'이 있어야만 배출됩니다. 그 세력이 일을 잘한다면 인민의 결정은 옳은 것이겠죠. 콩도르세는 교육과 사회수학의 방법으로 인민에게 국가 운영의 방향을 맡겨도 된다는 믿음을 만듭니다.

계몽이 실현된 미래로 가기 위한 이행기제의 핵심은 교육이었다. 콩도르세는 인민이 장기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필요하면 좀더 속성으로 교육받아 국가의 대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과 참정권의 관계에 대한 콩도르세의 견해는 그의 사회수학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수학적 계산을 통해 다수결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의 계산은 2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1. 각 유권자는 당파의 결정이나 집단적 선호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개별적 판단에 따라 투표한다.
2.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각 유권자가 올바르게 판별할 확률, 제시된 선택지들 중 어떤 것이 더 상대적으로 우월한 대안인지 올바르게 판별할 확률이 50퍼센트보다 높아야 한다.

콩도르세는 이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그 사안에 대해 다수결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 위의 책, pp.150-151.

콩도르세의 큰 철학과 작은 실천 방법들은 민주주의의 합리화로 귀결됩니다. 그는 사람들이 먹기 싫어하는 '날것 그대로의 민주주의'를 익히고 양념하여 먹히게끔 시도했습니다. 콩도르세표 민주주의는 날것 그대로의 민주주의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를 없애고, 이를 수용하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그렇다면 콩도르세표 민주주의는 비록 완전한 이상의 실현은 아닐지라도, 현실에 이상의 일부를 녹여낸 것이므로 성공한 것입니다. 콩도르세의 등장 이후부터 민주주의에 다른 이념을 결합하는 방법, 민주주의 정부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방법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렇게 민주주의의 합리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가 '인식의 대전환'을 일궈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은, 특히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 자유 보장이라는 공식이 깔려있는 상황입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의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 그리고 민주가 주는 이미지를 연상해봅시다. 자유는 '개인'이라는 개체 단위의 개념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 민주는 '인민(국민)'이라는 집단 단위의 개념이 단일한 의사(권리)를 표명하는 것을 떠올릴 겁니다. 자유는 개인이 구속받지 않고, 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반대로 민주주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선거가 그러하죠. 이렇게 생각해봤을 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도 결이 다릅니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도 공화주의적 요소를 결합시켜 현실화된 것처럼, 자유민주주의도 같은 과정을 거쳐 성립됐습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도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있었기에 성립이 가능했던 용어입니다.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를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개인의 자유,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이 생기면 '이건 민주적이지 않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은연중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사고'인 셈입니다. 하나 더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자유를 위해 민주가 있는 걸까요? 민주를 위해 자유가 있는 걸까요? 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둘 다 맞는 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적 사고가 내면화된 오늘날의 상황에 비춰봤을 때는 자유를 위해 민주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것이 등장한 19세기의 기준으로 보면 기만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민주주의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의도되고 실현된 것은 민주주의의 무늬를 띈 투표제 위에 수립된 자유주의 정부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차라리 투표자유주의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19세기에 등장한 자유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대의정부를 다소간 개량하고 새 옷을 입힌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기서 민주주의는 이전과 달리 완벽하게 나쁜 것이 아니라 길들여서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간접적인 민주정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이 진행된 뒤, 이제는 민주주의가 당연히 좋은 것으로 전제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 위의 책, pp.238-240.

이렇듯 지금의 민주주의는 순수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역사에서 혐오했던 민주주의는 순수한 민주주의인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였습니다. 직접민주주의는 인민이 국가 운영에 관여하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게 특징인데, 그것이 엘리트의 시선에서는 두려움을 넘어선 혐오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인구가 급속히 팽창한 근대 이후부터는 직접민주주의를 현실화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루소가 민주정은 아주 작은 도시 국가에서나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이에 관해서는 책의 세부 내용 소개 I 참고). 민주주의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근대 국가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됐습니다. 대의민주주의는 그것을 고려한 결과이자, 민주주의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어냈습니다. 이후로도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사조와 결합되어, 본질적으로 다른 이념들과도 어울리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어른과도 같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없지만, 현실에서 살아남는 처세가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가 중요한만큼, 세부 내용 소개를 두 편으로 나눠서 다뤘음에도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글들을 읽고 민주주의의 역사,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 등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책을 사서 정독해보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도 '사연 있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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