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바라보는 역사교육 문제 8장
이 장에서는 지난 장에 이어 필자의 서사, 그 중에서도 집필진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다. 필자는 학창 시절, '쏠쏠한 용돈벌이로만' 생각하던 사교육업 입문자 시절, '상당한 책임과 직업의식'이 따르는 집필진 시절이라는 세 시기의 변곡점마다 생각의 수정 및 변화가 이루어졌다. 필자는 학창 시절, 공교육의 과정론적 노력을 믿었다. 그러나 '결국 성적이 좋아야 결과론적으로 인정받는다.'라는 현실을 깨닫고 공교육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대학 생활의 경제적 문제 해결을 이유로 우연히 입문한 사교육업에서 공교육에는 없었던 '표준적이면서 구체적인 교육 장치'가 가동하는 광경은 놀라웠다. 이는 믿었던 공교육, 믿지 않았던 사교육이라는 필자의 명제를 '믿지 못하게 된' 공교육, '믿게 된' 사교육의 명제로 바꾸었다. 생각의 전향이 확실시되었다. 사교육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열망은 이내 필자를 집필진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런데 그 길은 생각을 다시 수정하게 만들어줬다. '장점만 보였던 사교육에도 단점은 존재하고 그렇기에 공교육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로 생각에서 수정의 수정이 거듭되었다. 바뀌지만 않을 것 같았던 전향된 생각에서 어떻게 다시금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얘기하는 것이 이 장의 핵심 내용이다.
독자들이 사교육계의 집필진에 대해 가질 만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도 해보고자 한다. 아마 두 가지의 궁금증이 있을 것이다. 첫째, '집필진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가?', 둘째, 재작년에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킬러 문항 카르텔은 집필진이 아닌가?'가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일 수도 있다. 집필진의 주요한 일 중 하나가 실제 평가원 모의고사 및 수능과 대단히 유사한 '실전 모의고사'를 개발하는 것이다. 실전 모의고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교육 당국이 문제로 삼았던 킬러 문항도 변별력 측정 및 완성도 향상을 위해 제작하기 마련이다. 교육 당국은 킬러 문항을 '공교육을 이수하는 것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고, 사교육계 내 모종의 카르텔과 접촉해야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에 사교육업에서 한 차례 돌풍이 불었다. 사교육업에서 폐쇄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킬러 문항 카르텔도 어딘가에는 존재할 지 모른다. 필자는 그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킬러 문항 카르텔과는 전혀 연관이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오히려 필자가 개발에 참여한 실전 모의고사들 중 일부는 공식 출판이 이루어져 온라인 플랫폼에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킬러 문항 카르텔 논란에는 여러 오해와 카멜레온같은 피상이 점철되어 있어, 정작 본질이 묻혔다. 그 본질을 실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밝혀보겠다.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하면 으레 '강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강사가 사교육업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어떤 강사가 어떤 과목의 몇 타의 위상을 차지하는지, 강의력과 커리큘럼은 어떠한지를 고려하며 사교육을 소비한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교육업이다.
사교육업의 보이지 않는 면을 볼 필요가 있다. 흥행을 거둔 영화를 예시로 들어보자. 영화 흥행에 대한 명성과 부는 총감독과 몇몇 배우들이 가져간다. 그런데 총감독, 배우만 있으면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영화 장면을 촬영하는 카메라맨, 세트장과 소품을 관리하는 스태프, CG 및 음향 효과를 다루는 감독 등이 있어야 영화라는 전체를 완성할 수 있다. 사교육업도 마찬가지다. '어떤 과목의 어떤 강사가 강의력이 탁월하다.'는 분명히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요소이다. 단발적인 일회성 강연에 그친다면, 언변만 능해도 문제가 없다. 사교육업에서는 두 가지의 변수가 추가된다. 하나는, 주요 고객이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객들이 '수능 등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적으로 '특정 과목의 학습에 대한 장기적인 지도를 요구'한다는 것이 그 변수들이다. 이 변수들로 인해 강사는 단순히 언변만 능해서는 안 되고, 쉽게 전달한 지식을 내면화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긴다. 그 장치로 대표되는 것이 '사교육식' 교재이다. 사교육식 교재는 개념을 구조화,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교재부터 실전 모의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이런 교재를 개발하는 사람이 집필진이며, 사교육업의 전체를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최근 사교육업의 전통적인 룰이 깨지고 있다. 이제 학생들은 1타 강사의 탁월한 강의력만을 원하지 않는다. 학습한 지식을 시험에서 내면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쉽게 말해 실전 모의고사)을 요구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교육업은 이 시뮬레이션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있더라도 그렇게 효과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았다. 개개인이 취미삼아 아마추어적으로 모의고사를 만드는 게 전부라 봐도 무방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와중, 한 사교육 회사(S사)가 돌풍같이 떴다. 이 돌풍은 잠깐에 그치지 않고, 기존 사교육업에서 고정적인 지분을 차지하던 타 사교육 회사들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러졌다. 어째서 설립 연혁도 짧은 사교육 회사가 이렇게나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사교육 회사가 시험 시뮬레이션을 '전문화, 시스템화'하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룰은 표준적인 공식이 되었다. 1타 강사의 강의만 들으면 만사형통한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집필진은 연륜이 있는 전문가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집필진의 평균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이 역시 집필진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 차이점이 존재하는 부분이다. 학습 교재 집필진은 어떤 학문에 대해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거나, 교육 현장을 수십 년 경험한 '전문가'가 할 수 있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다. '집필진은 전문가의 영역이다.'라는 전통적인 룰은 아직 유효하다. 그런데 '비전문가를 전문적인 집필진으로 육성'하는 새로운 룰도 유효해지는 추세이다.
집필진이 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룰은 사교육업의 새로운 룰과 궁합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등교육을 매개로 한 사교육업이 몇 가지의 특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인', '가장 많은 돈이 도는' 사교육업은 중등교육을 공략하는 사교육업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투기하듯' 사교육을 소비하고, 대학에 갓 진학한 학생들은 '자신이 수험생 시절 공부했던 지식만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직업으로써' 사교육을 소비한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중등교육을 공략하는 사교육업의 특수성이다. 사교육업은 바로 후자의 사교육 소비자를 주목하게 되었다. 수능 공부법, 수능 동향에 관해 가장 최신의 지식을 갖고 있으므로, 일정한 교육을 통해 집필진으로 육성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전문가를 영입할 필요가 없고, 대학생 입장에서도 집필진이라는 직함이 가지는 명예와 그에 상응하는 보수는 꽤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거라 예상한 건데, 그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새로운 룰에 따라 양성된 집필진은 거진 대학 학부생이다. 그야말로 사교육업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여가 활동을 즐기는 학부생들이, 사교육업이라는 공간에서는 가면을 쓰고 집필진으로 활동하며 수험생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전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일 것이다.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이상과 같은 설명으로 사교육업의 보이지 않는 사람인 집필진을 정의함으로써 보이게 만들었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
취미를 업으로 받아들이는 건 양날의 검을 지닌다. 덕업일치가 되어 행복할 수도 있고, 오히려 업이 취미의 흥미를 완전히 떨어뜨리기도 한다. 필자에게 평가원 모의고사/수능 역사는 오랜 시간 취미의 영역이었다. 스스로 시험지들의 출제 동향을 연구하고 학습 칼럼을 쓰거나, 이를 모방한 문제지를 만드는 것이 재밌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물들을 커뮤니티에 공유했을 때, 사람들이 좋아요를 표시하거나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을 남길 때 보람찼다.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때였던 것 같다. 반면, 집필진으로서의 필자는 평가원 모의고사/수능 역사를 업의 영역으로 다뤘다. 업의 영역에서는 '취미삼아, 아마추어적'이 용인되지 않으며, 꾸준해야 한다. 그래서 취미를 업의 관점에서 달리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손쉽게 경제적 가치를 얻는 대신, 순수한 행복을 잃는 대가를 치르는 게 꽤 크다. 인간이 순수한 행복을 누리려면 욕망과 현실이 일체해야 한다. 보는 눈(기준치)이 낮다면 행복해지기 쉽다. 하지만 취미를 업으로 받아들이면, '프로적이어야' 스스로 만족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더 이상 어떤 취미에 대한 동심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덕업일치는 쉽지 않다는 게 집필진의 위치에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얻었던 교훈이었다.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직업의식을 내면화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직업의식의 내면화는 곧 실력의 향상이자 성숙이다. 필자가 신입 집필진이었을 적에는 직업의식의 내면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개인적인 노하우 축적이 많이 되지 않기도 했고, '내가 이 업을 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오는가?'를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집필진은 학생들과 접촉하거나, 학생들이 있는 교육 현장에 갈 일이 없다. 교재라는 결과물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과외처럼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학생을 봐서라도 책임감을 손에 놓기 어렵다. 반면, 집필진은 교재를 편집하거나 모의고사를 제작하는 것이 반복적인 일상이어서, '어차피 공급할 교재와 모의고사도 많은데 편하게 하자.'라며 책임감이 해이해지기 쉽다. 매너리즘인 것이다. 집필진으로서 할 일은 많으며 반복적이고, 요구하는 수준도 높으니 지치거나 염증이 났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왜 집필진을 하는지 스스로 의미를 찾고 깨달아야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전문 집필진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필자도 이 산턱을 넘어야만 했고, 넘었다.
어려웠던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게 집필진 업무를 했던 원동력이었다. 그 원동력이 없었다면, 집필진을 잠깐만 하다 그만뒀을 지도 모른다. 집필진을 하게 되는 동기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만 가진다면 집필진을 오래 할 수 없다. 그러려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다. 업무량과 업무 강도가 상당하기에, 돈을 얻는 대신 일과 삶의 균형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시대이므로, 집필진은 이러한 시대적 기준과는 역행되는 측면이 있다. 집필진이 매력적인 직업임은 맞지만, 그 매력에는 분명한 대가도 따르는 것 또한 인지해야 한다. 필자도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집필진으로 있으면서 그 균형이 깨지는 걸 감수하는 게 고됐다. 그럴 때마다 어려운 학창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냉랭했던 교육 환경을 버텨오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순수한 열정으로 학습 칼럼과 모의고사 문제지를 만들었던 걸 생각하면 무너져서는 안 됐다. 이 고난을 슬기롭게 넘어야 필자의 서사가 찬란하게 완성되기에 더욱 그랬다. 필자의 존재로 하여금, '평범한 학생이 어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꿈으로 고난을 극복하면 이렇게 될 수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집필진의 위치에 설 때 미래에 담보될 이익도 계산하였다. 그 이익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필자는 직업의식이 내면화되고 교육적 사명감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필자가 속해 있었던 집필진은 정기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출판물을 낸다. 출판물들의 첫 장에는 집필진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진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사람들이 구매하고 본다는 것이 굉장한 자신감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필자 개인에게는 큰 성공이자 영광이었지만, 그 너머로 '공적인 이익'은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하였다. 그 이익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대학 및 학과의 이미지 향상이다. 앞서 '집필진은 전문가의 영역이다.'라는 전통적인 룰이 아직 유효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학 학부생으로 이루어진 집필진에선 그 룰이 어떻게 유효하게 작용할까? 고학력자 네트워크로 작용한다. 이 작용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고학력자가 중등교육을 공략하는 사교육업에 종사해야 믿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여전히 공공연하다. 따라서 고학력자여야 집필진이 되기 유리한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필자는 내로라하는 대학에 다니는 고학력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필진의 위치에 섰다. 고학력자 네트워크 사이에서 홀로서기를 꿋꿋이 해낸다면, 필자가 다니는 대학 그리고 사학과의 대외적 이미지를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둘째, 공감대의 형성이다. 필자는 그간 글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역사교육에 대한 여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학과 내에서는 그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이나 그 생각을 현실로 이루는 환경적 여건이 없었다. 사실 스스로도 개인적이고 독특한 생각을 현실로 이룰 곳이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이 속한 곳에 가망이 없다면 과감히 새로운 곳을 개척해보려는 열망이 싹트기 마련이다. 새로운 곳이었던 사교육업에서는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마음이 반만 맞는 사람 열 명보단 마음이 완전히 맞는 사람 한 명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남들과는 다른 뜻, 그것이 세상에 큰 물결을 일으킬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일련의 작업들로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와 공감대를 줘야 한다. 교재 집필을 통해 교육 소수자(이 표현의 의미는 3장 참고)에게 그 뜻을 선보이고 투자하였다. 이 투자는 필자 개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안겨주었다. 시간은 작년 개강총회 뒤풀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 옆에는 새내기가 앉아있었다. 그 새내기는 재수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영업 감각(?)이 발동했다. 혹시 필자가 집필에 참여한 교재로 공부했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답했다. 이렇게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필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을 두 눈으로 확인하였다. 공감대가 생겨났다.
직업의식의 내면화로 만들어진 교육적 사명감은 믿음이 없어진 공교육을 다시 보게 만들어줬다. 교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사교육업에 입문했을 때에는 사교육에 대한 믿음이 공고해지면서 공교육을 더욱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하지만 집필진이 되어 고된 업무들을 소화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한 사교육 회사가 창안하고, 집필진이 실무를 맡는 전문화, 시스템화된 시험 시뮬레이션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각광을 받는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이겼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역시 보이지 않는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교육은 공교육이 갖는 제약에서 자유롭고, 시장 경제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전문화, 시스템화된 시험 시뮬레이션을 운용하는 게 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사교육업이 새로운 룰을 창안한 것은 일차적으로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사교육업이 학생을 생각하는 부분은 단지 좋은 성적 거두기 뿐이다. 즉, 사교육업은 인간성이 묻어나는 직종은 아니다. 집필진 업무가 고된 것은 사교육업의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 그래서 집필진이기 이전에 인문학 중의 하나인 역사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사교육의 위력은 인정하지만, 사교육의 비인간성은 개선해야 하며, 그렇기에 사교육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시험 출제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데 학생 지도, 수업, 행정까지 도맡아 하는 교사들의 실정을 이해하고 '사교육에 견줄 만한 교육 시스템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은 다시 수정되었다.
'적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 불편한 관계이다. 서로가 서로를 꺼리고 비난한다. 이런 작태는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낳는다. 필자는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를 경험한 사람이다. 이 두 교육 체제는 상호 보완적 관계가 아닐까 싶다. 예컨대, 공교육의 장점은 사교육의 단점이고, 사교육의 장점은 공교육의 단점이다. 교육의 본령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공교육이, 교육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재편해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효과를 안겨주는 것에 있어서는 사교육이 우월하다. 두 교육 체제가 열등한 것은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결국 공교육과 사교육이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맞교환'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공교육의 틀에 있던 학생에서 사교육의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사람인 집필진까지의 여정을 거치며, 허심탄회한 기행문을 남겨본다.
집필진에 있었을 적 하나의 메일을 받았다. 한 언론사 기자가 킬러 문항 카르텔과 관련해서 인터뷰가 가능하느냐는 요청이었다. 당시의 필자는 집필진에 입문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서, 지금처럼 사교육업 전반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킬러 문항 카르텔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런데 뉴스와 신문에서는 사교육계에 킬러 문항 카르텔이 있고 때려잡아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인생 첫 인터뷰 경험을 쌓을 겸(?), 기자의 요청을 승낙하고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기자는 사교육업의 뒤를 캐고 싶었던 듯하다. 사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몇 명이고, 업무 프로세스는 어떠하며, 킬러 문제를 족집게처럼 집어주는 다른 학원이 있는지 등을 질문하였다. '집필진은 뒤가 구린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요지로 답변을 하긴 했다. 그 후로 추가 인터뷰 요청이 없었던 걸 보면, 필자한테서 얻을 만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당연하다. 필자는 수능 주요 과목인 국어, 수학, 영어 과목 집필진도 아니고 사회탐구 과목 중의 하나인 역사 과목 집필진이었으니 말이다.
집필진은 킬러 문항만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실전 모의고사를 개발할 때, 평가원 모의고사 및 수능의 원칙을 그대로 따른다. 기본 문항, 조금 어려운 문항(준킬러 문항) 출제를 위주로 하면서, 상위권의 변별을 위해 어려운 문항, 즉 킬러 문항을 두어 개 '가미'하는 정도이다. (사회탐구 과목의 문항 수는 20개이므로) 킬러 문항만을 20개 만들어보라 하면, 머리가 터져나가서 할 수 없다. 그렇게 만들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킬러 문항을 문제시하는 주요한 근거는 '교육과정 내 지식만으로 풀 수 없다.'인데,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역사 과목 문항의 경우, 교육과정 외 내용을 '소재'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문제풀이는 교과서 내 내용을 숙지한다면 풀리게 설계하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문항을 제작하고 검토할 때도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된 개념인가?'를 확인한다. 킬러 문항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집필진은 그저 학생들에게 '어떻게 교육과정의 틀을 준수하면서 효과적인 시험 시뮬레이션 혹은 교재를 고안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집필진에게 내려진 책무를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 킬러 문항 카르텔로 취급된다는 것이 착잡했다.
킬러 문항 카르텔이 파생된 원인은 수능의 과열 및 고도화이다. 기존의 수능 출제 기조로는 학생들을 변별하기 어려워지면서, 평가원이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수준(대표적으로 문제풀이 능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평가원은 '교육과정을 준수하고 학교 수업을 충실히 들었으면 풀 수 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한다. 학생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평가원 시험이 어려우니, 시뮬레이션을 통한 단련이 필요하겠어.'라는 욕구가 발생하고, 그걸 간파한 사교육업이 시험 시뮬레이션을 상품화한 것이다. 따라서 킬러 문항 카르텔 = 집필진으로 규정하여 사교육만을 때려잡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공교육의 교육 평가인 내신에서도 킬러 문항은 존재한다. 오히려 소수점 단위로도 등급이 갈리기에 더 괴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사도 킬러 문항 카르텔인가? 어불성설이다. 학생들은 내신과 수능 모두에서 변별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비단 수능만의 문제가 아니다. '변별에 혈안이 된 교육 풍조'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이 장의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은 '보이는 면만 보지 말자.'이겠다. 이 장에서는 사교육의 보이지 않는 면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사교육업에는 집필진이라는 보이지 않는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측면, 사교육업에도 분명한 단점과 한계가 존재한다는 측면, 킬러 문항 카르텔의 피상과 본질은 같지 않다는 측면을 보여주었다. 다만, 특정성 성립을 방지하기 위해 사교육 회사의 이름과 필자가 실제 집필에 참여한 콘텐츠의 구체적인 명칭, 집필 업무 프로세스 등은 보여주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사교육업의 동향 변화와 내부 상황을 알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며,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왔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필자를 집필진의 세계로 인도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