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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May 09. 2020

트럼프 대통령의 이유 있는 똘끼

냉전의 종식과 셰일가스 혁명

그동안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처한 이유는?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임박하던 1944년 7월 1일, 미국의 브레튼 우즈에서 열린 국제 통화금융회의에 참석한 44개국 대표들은 전쟁 이후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의 주장대로, 주요국 정부는 변동환율제도가 아닌, 고정환율제도로 회귀하기로 결정했다.

Bretton Woods ConferenceBretton Woods Conference, July 1944.UN Photo
변동환율제도에 대해 설명하자면, 환율을 외환시장에서의 수급에 의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반면 고정환율제도는 '금본위제'처럼, 특정 귀금속이나 통화에 대해 교환비율을 통일시킨 제도이다. 물론 브레튼 우즈에서 맺어진 합의는 완전한 '금본위제'는 아니었다. 달러는 금 1온스에 대해 35달러로의 교환을 보장하는 대신, 다른 나라는 미달러에 대해 자국 통화의 교환비율을 고정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또한 1930년대 금본위 제도 해체의 교훈을 되살려 국제통화기금(IMF)을 만들었다. IMF는 회원국이 일시적인 국제수지 불균형에 빠져 고정화율 제도를 유지할 수 없을 때 지원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돈의 역사 (홍춘욱)>


그런데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 미국이 약속한 건 고정환율제도 복귀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국가에게 미국 시장을 개방하는 한편, 세계 교역 통행로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이 취한 조치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는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거나 식민지를 늘려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실익이 있지 않고서야 '교역로의 안전 보장'에 드는 비용을 건질 수도 없었다.


자신의 시장을 다른 나라에게 개방하는 한편, 세계 교역로의 보장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떠 앉았다. 미국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1. 소련에 대한 견제

스탈리 그라드(오늘날의 볼고그라드)에서 독일군을, 만 에서 일본 관동군을 섬멸한 세계 최강의 소련 기갑부대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유럽과 동아시아, 아프가니스탄을 향한 소련의 위협에 미국이 직접 맞서기는 대단히 힘들고, 수지타산도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미국은 독일과 일본 같은 2차 대전 당시의 적을 우방국으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즉 미국 시장을 내주는 것은 물론, 마셜 플랜 등을 통해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금을 지급함으로써, 소련의 위협에 대신 맞서 줄 방파제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Marshall Plan <wikipedia>


2. 석유 수입의 안정성 보장

또 다른 이유는 세계 교역망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시작된 석유 시대에 적응해 중동으로부터 미국,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수송로를 보장하는 것은 미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주간 고속도로망의 건설로 석유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석유 순수입국으로 전환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석유 수송로의 안전은 경제 성장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었다.


부작용: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그런데 이와 같은 환상적인 시스템에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였다. 이는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발생했는데, 무엇보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고평가 된 탓이 컸다. 즉, 달러의 가치를 다른 나라에 비해 높게 쳐서 미국 사람들에게 수입 상품이 매력적으로 여겨지게 한 것이다. 물론 미국은 다른 나라의 상품을 값싸게 구입하는 이점을 누렸다.

또 다른 요인은 독일과 일본 등 패전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이었다. 1인 당 국민소득의 가파른 상승에서 보듯, 패전국은 빠른 속도로 미국의 경쟁력을 따라잡았다. 특히 독일은 자동차와 기계산업, 일본은 전자제품과 조선 등에 특화돼 미국의 거대 소비시장을 파고들었다. 물론 미국산 제품이 압도적으로 우수했으나 값이 너무 비싸고, 또 패전국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쌓아두었기 때문에 미국의 대외 수출은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다.

미국의 경상수지(단위: 백만 달러)_출처: tradingeconomics.com


위에서 보이는 데로 미국은 매년 천문학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했고, 그 후 일본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 경제에 충격을 끼치고 있고 리쇼어링(reshoring)을 통해 중국 공장을 철수하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공약 중 하나이며 세계적인 추세다.  


designnews.com

미국이 방위비를 분담하며 세계 교역 통행로를 지켰던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 중 이념적 대립에 있어서는 이미 냉전이 종식되었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원유 수입에 있어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셰일가스 혁명

최근 미국 에너지 정보청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을 전후해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에서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전에 석유를 뽑아내지 못하던 셰일 암석층에서 손쉽게,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디플레 전쟁


출처: wikipedia
일반적으로 석유는 지하의 고온, 고압 환경의 유기물이 풍부한 셰일 암석층에서 생성된 후 지표면 가까이로 점점 이동한 다음에 단단한 암석층 아래에 고이게 된다. 이른바 '배사(Anticline) 구조'라고 하는 특수한 종류의 지층에서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중동과 카스피해 연안이다. 반면, 셰일에 고여있는 석유와 가스는 밀도가 무척 낮을 뿐 아니라 셰일 암석이 꽤 단단한 편이서 석유 생산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며 셰일 암석층에 있는 석유 및 가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평시추와 수압 파쇄(Hydraulic Fracturing) 기술이 개발되며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다. 이 기술은 이름 그대로, 석유와 가스가 밀집되어 있는 셰일 암석층을 수직으로 파내려 간 후에 여기서 다시 수평으로 시추 파이프를 뚫어낸다. 이후 물과 모래, 그리고 소량의 화학약품을 섞은 혼합물을 강한 압력으로 쏘아내면 셰일에 고여 있던 석유와 가스가 빠져나오는 방식이다.
<디플레 전쟁 (홍춘욱)>
An illustration of shale gas compared to other types of gas deposits <wikipedia>


셰일 오일의 생산단가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1배럴을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단가가 8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며 60달러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신기술이 바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시추이다. 수많은 시추 통계를 활용해서 최적의 혼합물 비율을 계산해내며, 더 나아가 어떤 지역에 매장량이 많은지 예측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된 것이다.



세계 교역로의 안전을 보장한 것과 국내 시장 개방은 결국 이념적 대립과 자국의 안정적인 석유 수입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우세가 역사적으로 확인되고, 자국 내 원유 생산이 소비를 넘어선 이때 예전의 협정들이 가져다준 이익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정책들이 이런 미국의 변화와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참고도서: 돈의 역사, 디플레 전쟁, 돈 좀 굴려봅시다, 환율의 미래

#미국 #셰일석유 #셰일혁명 #브래튼우즈 #리쇼어링 #디플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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