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직장인 Jul 31. 2020

호모 스크리벤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를 묻는 질문에 답 하자면 나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다. 또한 S그룹 계열사를 14년째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아들이며 지금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생의 오빠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할 수 있고 그중 어떤 관계는 영속적이며 또 다른 관계는 끝이 정해져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내 시간을 회사에 저당 잡혀 하루를 살고 그 보답으로 월급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것 없이 나이만 먹었고 나를 표현할 길은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증거인 명함뿐이었다. 그럴수록 회사에 더 의존했고 회사로부터 버림받는 미래가 두려웠다. 가끔 회사에서 배제되는 꿈을 꾸며 괴로워했고 잠에서 깬 후 그것이 꿈인 것을 감사한 적도 있다. 회사에 의존할수록 내 능력은 점차 초라해졌고 더욱더 회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한 달, 한해를 무사히 넘긴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다. 나는 회사와 이별하는 순간 의미가 사리지는 명함에 의지한 채 나를 소개했다.


좀 더 근원적인 나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을 말하기 위해 언젠가 쓸모가 없어지는 명함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에 속해 그들 속에 있는 나로 표현하지 않으며, 오롯이 하늘 아래 당당히 서있는 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배경과 내가 맺은 관계를 벗어나 나를 표현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이 삶의 큰 해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믿음으로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나를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 회사라는 껍데기를 벗어나 나에 대해 말하려면 과연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가?


그동안 나를 정의했던 손쉬운 말들을 벗어던지고 찾은 나를 표현하는 말은 바로 '글 쓰는 사람'이다. 나의 존재를 좀 더 의미 있게 만들고 내 삶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내 활동이 바로 글쓰기다. 


글 쓴 뒤 내가 맛본 것은 일종의 충만감이다. 회사에서 작성한 수많은 자료와 문서 중 어떤 것도 내 것은 없지만, 내 이름으로 글 쓴 뒤 글과 경험의 축적을 맛보았고 내가 쓰고 싶은 내용과 방법으로 글을 쓰며 글쓰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나는 글 쓰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산지 1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써온 글이 십몇년동안의 회사생활보다 더 큰 교훈을 준다. 삶을 기록하며 그 속에 숨어있는 가치와 교훈을 얻었다. 글 쓰며 지내온 내 삶은 그전보다 밀도 있고 다면적이며 실수든 성공이든 그 속에서 얻은 것들을 증폭시켰다. 


글 쓰며 더 큰 욕심이 생긴다. 더 좋은 글을 쓰며,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매일의 삶에서 배우고 그것들을 다시 생활에 녹여 밀도 있고 가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글 쓰며 축적되는 삶을 살고 있다.


글 쓰지 않던 삶은 남는 것이 적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글을 쓰려해도 예전의 기억은 손에 쥔 모래처럼 흩어져 버리고 한 줌도 제대로 쥘 수 없이 사라졌다. 글로 남기지 않은 기억과 경험은 무가치했다. 글로 쓰며 기록하고 축적한 삶만이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할 수 있다. 비록 14년 동안 회사생활을 했지만, 기록하지 않고 글로 남겨두지 않았던 그 시간은 내 삶에 공백으로 남아있다. 그동안의 삶을 반성하고 경험과 느낀 바를 글로 남기려 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서일까? 글로 사유하지 않아 남은 것은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소박할 뿐이었다. 


그에 반해 글쓰기를 시작한 후 삶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졌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겪은 일들을 정리하고 복기하는 과정에서 그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넘겼을 많은 것들을 깨닫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다시 내 삶에 적용하고 있다. 


글로 내 삶을 적으니 객관화가 가능했고 메타인지가 생겼다. 글로 쓰기 전에는 막연히 잘 산다고 자위했지만 글로 적으며 구체화하니 내 삶에는 메워야 할 구멍과 채워야 할 빈 곳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한 톨의 별 볼 일 없는 재주를 과대평가하는 꼰대의 삶을 버리고 내 빈 곳을 보며 끊임없이 채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살려한다.  


앞으로도 나는 글 쓰며 축적하는 삶을 살 것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 호모 스크리벤스다.


#글쓰기 #호모스크리벤스

작가의 이전글 글은 어떻게 직장인의 무기가 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