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세상 속으로
우리 집에는 거의 9년을 함께한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막내가 태어난 후 세 아이를 위해 세 그루의 나무를 샀고, 이름도 지어주었고, 이사를 다닐 때에도 항상 함께 했다. 세월의 변화 속에서 집안의 기쁨과 슬픔을 묵묵히 지켜보며, 우리 곁을 늘 지켜온 나무들을 오랜 시간 정성껏 키워왔지만, 몇 해 전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서히 시들기 시작했다. 세 나무 모두 잎은 갈색으로 변해가고, 가지는 앙상하게 말라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영양제도 주고 비료도 바꾸어 보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 나무들은 점점 존재감을 잃어갔고, 우리는 그저 습관처럼 바라보며 무심히 한두 해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제, 결국 결심을 하고 말라죽은 나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마른 가지를 하나씩 잘라내며, 흙을 파내고 간신히 뿌리를 꺼내보니, 화분 속의 뿌리들이 화분 기득 뒤엉켜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뿌리들은 그동안 내가 몰랐던 깊은 곳까지 뻗어갔고, 어떤 뿌리는 화분 바닥을 뚫고 밖으로 나와 땅속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무들이 끝까지 버티며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뿌리를 보는 순간,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나무의 크기에 비해 화분들이 충분히 크다고 믿으며, 가지와 잎을 가꾸는 데에만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이 나무의 뿌리가 더 뻗어갈 공간은 너무 좁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마당에 심어주었다면, 이 나무들은 지금쯤 훨씬 크고 건강하게 자라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부모로서 지켜야 할 원칙은 분명히 있겠지만, 보호라는 이름 아래 내가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던 규칙과 울타리가 혹시나 화분처럼 좁은 틀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되묻게 된다. 나 스스로는 그것이 안전하고 넉넉한 울타리라 여겼지만, 어쩌면 그 울타리가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연 속 나무들은 사계절을 거치며 변화하고, 바람에 흔들리고 때로는 폭풍을 맞으며 뿌리를 더욱 깊고 넓게 뻗어간다. 나무가 스스로의 방식으로 자라듯, 아이들도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어려움과 도전을 마주하게 될지라도, 그 모든 경험이 결국 그들을 단단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믿고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 대한 당장의 후회는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지나온 세월의 경험으로 그들의 자유로운 성장이나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문득, 내 삶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나만의 화분 속에 갇혀 스스로의 가능성과 관계를 제한하며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내가 만든 기준과 한계 안에서 머물며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나 자신을 가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성장이란 결국, 내가 만든 화분의 크기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존재가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어디로 향할지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하루였다. 말없이 전해진 나무의 간절한 소망—‘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는 그 한마디는 오늘 나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이제 나는 그 소망을 마음에 품고, 나 또한 나의 한계를 넘어설 용기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 더 자유롭고, 더 넓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빛으로 자라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