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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Cove

삶의 리듬을 맞추는 공간

by 캐나다 마징가

놀스밴쿠버의 끝자락,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Deep Cove는 마치 커피 광고 속 한 장면처럼, 캐나다 특유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작은 마을이다.


지금은 주말이면 주차 공간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Deep Cove만의 본연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IMG_5817.HEIC Deep Cove 해변

Deep Cove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마음에 그려지는 풍경은 단연 수상 스포츠다. 마을 중심 해변가에 자리한 카약 센터를 중심으로 여름이 되면 이 작은 만은 활기를 띤다.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카약과 카누, 그리고 저마다의 리듬으로 노를 젓는 사람들—그 모습만으로도 이곳이 자연과 일상 사이를 유유히 오가는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카약 센터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부터,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레슨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이곳이 단순한 레저 업체를 넘어 ‘인간과 대자연의 조화로운 연결’,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을 추구하는 사회적 목적 기업이라는 점이다. 활동의 중심에 사람이 있고, 자연이 있으며, 서로를 잇는 배려가 존재한다.

화창한 날, 카약이나 카누 한 척을 빌려 고요한 해안선을 따라 노를 젓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백팩에 넣어온 간단한 간식과 와인을 꺼내어 바위 위에서 나누는 한 끼. 거창하지 않지만, 그런 순간이야말로 캐나다 생활이 선사하는 가장 큰 기쁨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품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삶은 다시 단순하고 풍요로워진다.

IMG_5824.HEIC 카야킹을 즐기는 사람들

이 작은 마을은 분명 도시의 연장선에 있지만, 한 발만 들여놓아도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조금만 숲길을 걸으면 닿는 Quarry Rock 전망대. 길지 않은 산책 끝에 만나는 풍경은 놀랍도록 평온하다. 깊고 푸른 숲, 잔잔한 바다, 그리고 그 곁을 감싸는 인디언 암의 품. 대자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다.

마을은 크지 않지만, 골목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흔한 프랜차이즈 대신,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 있는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다. 손으로 빚은 도자기, 오래된 책 향기가 나는 작은 책방, 갤러리까지 로컬 사람들의 삶이 흐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의 또 다른 명소, Honey Donuts & Goodies의 소문난 도넛을 맛보기 위해 마을을 찾기도 한다. 사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특별히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이 작은 카페 앞에는 도넛과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며 북적인다.

IMG_5821 2.heic 벤치에서 바라본 Deep Cove의 바다 풍경
IMG_5832.HEIC Deep Cove의 마리나 풍경
IMG_5834 2.heic Deep Cove 비치 풍경

광역 밴쿠버 주변에는 크고 작은 21개의 소도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어느 도시가 가장 살기 좋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망설임 없이 당연히 내가 사는 동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어쩌면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말에는 각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애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도시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도시 인프라가 탄탄히 갖춰져 있고,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아름다운 산책로와 공원이 펼쳐져 있다. 이는 밴쿠버가 지닌 천혜의 자연환경 덕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캐나다 사람들의 슬기로운 태도 덕분일 것이다. 개발보다 보존을 우선하고, 편리함보다 균형을 중시하는 그들의 선택이 지금의 밴쿠버를 만든 셈이다.


그 가운데, Deep Cove는 조금 특별한 곳이다. 바쁜 도시의 흐름에서 한 발짝 비껴선 이 마을은, 잠시 숨을 고르고 삶의 리듬을 다시 맞추게 해주는 공간이다. 조용한 골목과 물가, 그리고 그 속을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좋고, 어딜 가지 않아도 그저 좋은 그런 마을.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어느 오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특별한 장면도, 말할 거리도 없는 평범한 순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을이 더 마음 편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목적지가 아닌 그 안에서 마주하는 이런 조용한 감정들—그 한순간의 여유가 아닐까. Deep Cove는 그런 여유가 잔잔히 퍼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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