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5일
애정이나 관심을 핑계로 사생활을 캐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고향을 묻거나 출신 학교를 묻거나 사는 곳을 묻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반으로 나뉜 바람에 협소하기 짝이 없는 남한 땅을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 나눔을 지역 갈등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출신 지역에 따라서 편 가르기를 시도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에게 표를 주는 국민들이나 똑같이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뿌리 깊은 학벌주의의 폐해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출신 학교를 묻는 것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겠다는 구태의 반복이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의 씁쓸한 답습이다.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부동산 가치 편중 문제가 역사상 가장 심각한 때이다. 서울의 특정 지역 땅값,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중이다. 거주하는 곳이 바로 내가 가진 것의 크기를 대변하는 시대인 만큼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은 곧 재산의 규모를 묻는 일만큼 무례하다. 고향, 출신 학교 그리고 사는 곳을 묻는 일은 그래서 무신경하고 천박하다. 사실은 고향, 출신 학교, 사는 곳 중 어느 것도 나라는 사람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고향, 모교, 거주지는 나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다.
나는 네 엄마의 고향, 출신 학교, 사는 곳 대신에 세계관, 인생관이 궁금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궁금했고 그중에 나를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가 가장 궁금했다. 그것만이 관건이었다. 좋은 질문을 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대단히 간단한 이치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고 싶고 그래서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면 고향, 출신 학교, 사는 곳을 묻는 대신에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물어라. 그리고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물어라. 이유를 물어라. 그것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아는 길이다. 나는 네가 무례한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