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할머니가 파김치를 담가서 반쯤은 몸을 접은 채로 우리 집에 왔다.
꼬부랑 할머니가 담근 파김치는 꼬부랑 할머니가 들기에 무거웠다.
번쩍 들어 식탁 위에 펼쳐 놓은 파김치에서 텁텁한 흙냄새가 났다.
모 유명 가수가 월남에 파병 갔을 때 그의 어머니께서는 파김치를 월남에 보냈었다는 말을 이번에도 잊지 않으셨다.
꼬부랑 할머니에게 파김치는 파병 간 자식에 보내는 위문품이자 전투 식량이다.
어릴 때 할머니는 우리 엄마에게 모질었다고 한다.
한 겨울에 손빨래를 시키면서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때를 트집 삼아 다시 빨래터로 보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꼬부랑 할머니에게 내내 다정하지 않았다.
또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꼬부랑 할머니도 어딘지 모르게 죄지은 사람 모양 처세가 당당치 않았다.
꼬부랑 할머니가 자리에 앉으면 할머니는 더 이상 꼬부랑 할머니가 아니게 된다.
꼬부랑 할머니의 등이 의자의 등과 나란히 꼿꼿해지면 우리는 꼬부랑 할머니가 반쯤은 몸을 접은 채로 우리를 향해 걸어올 때보다 더 애달파진다. 다시 접힐 할머니의 몸이 떠올라서다. 하얀 쌀밥 위에 파김치 웃짐 얹어 고봉밥 비워내면 그때서야 꼬부랑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 난다. 그리고는 다시 반쯤은 몸을 접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신다.
꼬부랑 할머니가 파김치를 가져오신 날은 내가 설익은 시를 쓰는 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