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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리 Jul 09. 2023

명함 소설은 책이 아니다 2편

김채리 출판사 창업일기 #16

안녕하세요 채리입니다.


오늘은 노마드족 모드로 대구에서 글을 띄웁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일 걱정을 달고 살아요. 사장이 되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매 순간 느낍니다. 오늘도 살펴 읽어주세요.





출판사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처음이긴 하지만, ISBN 발급도 첫 도전이라 많이 헤맸다. 등록해야 할 정보가 미비하기도 했고, 외형이 독특한 책이 있다 보니 여러 번 메일로 내용을 보완한 끝에 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출판사의 인기도서이자 나름 베스트셀러인 『나, 너 소설』이 ISBN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낱장자료는 ISBN 부여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위기에 직면했다. 어떻게든 번호를 받아야 했다. 담당부서와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더 냉정했다.


"죄송하지만, 해당 자료는 '책'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책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덧붙여 우리 출판사의 주요 도서상품이라 시리즈로 출간할 예정이니 꼭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유통물류진흥원에서 일반 상품 코드를 부여받으라는 말에 나는 절망 아닌 절망에 빠졌다. 명함 소설이, '나, 너 소설'이 책이 아니라니. 난관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주최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측에 연락을 드렸다. 저 어떡하죠...? 서울국제도서전 행사 담당자분들도 내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듯했다. ISBN 센터와는 반대의 응답을 내놓았다.

 

"저희가 보기엔 해당 도서는 책으로 보이는데요. 죄송하지만, ISBN을 발급받지 않으면 굿즈 상품으로는 판매할 수 없습니다."


아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이 아니라잖아요.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버렸다. 컴퓨터 앞에서 앞머리를 쥐어뜯기도 잠시, 제주북페어에서 구매했던 '주머리시'가 생각났다. 담뱃갑 형태의 케이스에 20장가량의 낱장의 시가 들어있는 독특한 형태의 시집이었다. 주머니시에는 ISBN이 있던가? 다시 한번 선배 창업가의 힘을 빌리는 순간이었다.


보았노라, 난 보고야 말았다. 주머니시 케이스 옆면에 바코드가 있었다. 그것도 ISBN 번호와 함께. 난 신이 나서 ISBN 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낱장자료인데 ISBN 번호를 받은 책이 있다고 말씀드리니 번호를 확인해 달라 하셨다. 조금 당황하신 듯하더니 확인 후에 다시 연락을 준다 하셨다.


그 뒤에도 몇 차례 통화가 이루어졌다. 해당 도서는 몇 년 전에 ISBN 번호를 부여받았는데 지금은 국제룰에 따라 도서 규정이 변경되어 낱장자료가 제외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안 되는 건데... 그래도 한 번 알아봐 주시겠다고 했다. 논의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결국 당일에는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고 다음날 연락을 주겠다는 통화로 그날 하루는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 오전 내내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럴 때일수록 강하게 밀어붙이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나는 그럴수록 신사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했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에 결국 분노(?)를 참지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나, 너 소설의 ISBN 번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최종 발급 과정에 약간의 언쟁이 오갔지만, 등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써주신 덕택이었다. 979-11-983229-1-3 그 번호에는 예외조건이 같이 붙여졌다. 본래 규정에 의하면 ISBN 발급이 불가능 하지만 예외적으로 인정해 주겠노라는. 이런... 나, 너 소설은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 출간해야 하는데... 나는 이대로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면 안 될 것 같아 장문의 메일 한 통을 보내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추가로 덧붙여 주신 항목에 대해서는 ISBN 센터에서도 계속 진지하게 논의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는 현재 독립출판을 통해 기존 책의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책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책'과 '글'로 창업한다고 했을 때 정말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요즘 사람들이 누가 책을 읽냐?', '그렇게 해서 돈을 어떻게 벌거냐?'라는 말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통장 모양의 책, 배달 책자 형태의 책을 같이 ISBN 센터에 등록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독특한 형태의 책을 만들어서 책을 정말로 읽을 만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플리마켓을 다니며 책을 소개했습니다.

'진짜 통장인 줄 알았다', '은행에서 오신 건 줄 알았다'라고 말하며 책에 관심을 두고, 한 번씩 펼쳐보시는 분들을 보면서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재밌는 요소 덕분에 다시 한번 책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남아있습니다.

'나 너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서전, 플리마켓, 독립서점에서 일전에 판매를 진행했었지만
형태가 독특한 것을 재밌어하는 분들은 있었지 '이건 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다는 컨셉 아래에서
제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고, 다음 권에 대한 기대가 큰 작품입니다.

명함을 넣고 가시면 이름을 적어주겠다고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이틀 만에 46명이 명함을 넣어주셨고,
최근에는 도서전 행사 이틀 동안 70여 명이 이름을 넣어주고 가셨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독자들 입장에서도 새롭고 뜻깊은 경험을 주고 있는 이 도서를
앞으로도 꼭 책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저는 틀에 가두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술이 끊임없이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는 것처럼 책 역시도 계속해서 확장되고 변화되어야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창작자들이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는 제작물의 가치를 한국 ISBN 센터를 통해 더 빛내게 해주십시오.

나, 너 소설의 2권 발간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채윤 드림


오늘의 채리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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