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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Feb 09. 2021

취미를 선물하고 싶다.


작년 가을 건강검진으로 엄마는 지난달 큰 수술을 하셨다.

생각도 못 한 병명을 들은 우리 가족 모두 어안이 벙벙했는데 당사자인 엄마는 얼마나 어이가 없고 맥이 빠졌을까.

평소 긍정적인 엄마였지만 놀라운 이 상황에 엄마도 어쩔 수 없이 비관적이고 약해지고 여렸다.


새해가 아직 어색해라고 투정 부리기도 전에 우리는 1월부터 잔뜩 긴장했다.

그사이 우리 가족에게는 순삭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간 1월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1월 한 달을 1년만큼의 긴 시간처럼 보내신 듯하다.

그 한 달 사이에 엄마의 기운이 폭삭 약해졌고, 다섯 살 정도 더 나이 들어 버린 것 같고, 한없이 엄마의 등이 작아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 휴식과 안정 그리고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일상의 활동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고 코로나로 외출이 자유롭지도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가 작년에 무릎 수술을 먼저 했기에 산책이 아주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혹여, 엄마에게 우울증이 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삶의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취미를 선물해 주고 싶다.


하지만 뭔가 배운다는 것, 취미를 하나 만든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어렵다.

이것저것 기웃거려보다 드디어 취미를 찾은 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림도 그려봤고 도자기도 만들어보고 뜨개도 해봤다.

심지어 박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우쿨렐레는 서재 한쪽에서 품위 있는 장식품처럼 걸려있다.


엄마는 뜨개를 잘하셔서 예쁜 실이라도 사드리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뜨개도 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참 무서운 병이고 후유증도 크고 사람의 의욕을 정말 저하시키는 나쁜 병인 것 같다.

그래서 고민하다 떠오른 건 전부터 엄마가 배우고 싶었던 캘리그래피다.

문화센터 같은 곳이라도 다니며 배우면 사람도 사귀고 좋으련만..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에게 강의 영상을 켜주고 들으면서 해보시라 말씀은 드렸지만 유튜브도 썩 좋아하지 않는 엄마라서 역시 거절당했다.


그래서 서점에 가봤더니 이런 책이 있었다.

트로트 가사를 쓰는 책을 발견해 엄마가 좋아하실까 싶어 사진으로 먼저 보여드렸다.

그런데 엄마가 좋아하는 트로트가 몇 곡 없었다. 엄마의 깔끔한 대답에 탈락. 하.. 어렵다.


그래서 그냥 기본적인 것부터 챙겨드렸다.

엄마에게 챙겨드린 준비물.


엄마 일단 쓰고 싶은 글을 써보는 건 어때!

엄마가 좋아하는 불교 경전을 펴놓고 따라서 쓰면 일석이조 일 것 같아!

엄마가 좋아하는 발라드나 잔잔한 트로트를 카페처럼 플레이해놓고 연습해 보는 건 어때!


이런 내 마음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쥐여주는 마음 같다고 해야 할까.

엄마는 내 마음 씀씀이에 오케이를 하신 건지, 아니면 귀찮다 싶어 일단 승낙하신 건지..

괜찮을 것 같다고 엄마는 흔쾌히 받아주셨다.


친정에 가면 엄마의 노트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슬쩍 체크해 봐야겠다.

진작에 엄마가 캘리 배우고 싶어 할 때 같이 다니면서 배울걸..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아니면 노래교실을 좋아하셨는데.. 이 또한 모임이 안되니깐..

줌 강의하는 노래교실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전원주택을 갖고 싶어 하셨으니 땅부터 알아보시라고 해야 할까.

집을 지어보신 부모님이라 이미 지어진 타운 하우스는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고..

아빠랑 여행하듯 차 타고 이곳저곳 나들이 겸 외출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긴, 아빠도 엄마 걱정에 체력이 많이 약해지셨는데..


하.. 이럴 땐 나도 이미 많이 벌어놓은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내게는 벼락부자가 되는 재주는 없나 보다.

그럼 내가 함께하며 이것저것 보여드리고 맛 보여드리며 챙겼을 텐데..

로또만이 나를 구원해 주려나.

할아버지, 할머니 제게 숫자를 알려주세요.

영화처럼 숫자를 알려주는 거울이나 카메라 이런 건 없으려나 이상한 상상도 해본다.


엄마에게 새로운 취미를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엄마에게 노후는 이렇게 재미있게 보내시면 된다 알려드리고 싶은데..


그것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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