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보라 May 07. 2021

할머니 냄새.


방구석 1열의 윤여정 배우 특집 편에서 계춘 할망을 봤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지만, 영화 전체를 다 본 것도 아닌데 보는 내내 그냥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살만하다.
이제 내가 네 편이 되어줄 테니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대사가 날 더 울렸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고, 할머니를 멀리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엄마에게 할머니는 시어머님이고 또 함께 살았던 10년 시집살이 속 참 어려운 관계였지만,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할머니에게 난 첫 손녀이고 다른 손자에게 쏟는 내리사랑보다 함께 사는 나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셨다.


동생이 태어나 7살부터 할머니와 함께 자기 시작했고 애착 행동으로 할머니의 목주름이나 귓불을 만지는 버릇이 있기도 했다.

새벽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약수터에 가시면 그새 할머니 빈자리를 알고 일어나기도 했었다.

또, 나의 반찬 투정은 할머니가 다 받아주셨고, 사촌 오빠 동생과 싸워도 할머니에게 1순위는 무조건 나였다.


부천에 올라온 후 제일 보고 싶었던 사람은 할머니였고 할머니의 살 냄새 촉감이 그리웠다.


부천으로 올라온 후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낼 기회는 명절 연휴였고 그때마다 다른 손자 손녀보다 날 더 챙겨주셨고 동생들 역시 그런 사실을 알기에 내게 먹고 싶은 요리나 간식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고2쯤 할머니가 다르게 느껴졌다.

명절이라 시골에 내려갔는데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노인 냄새라고 하는 청국장 냄새 같기도 하고 꿉꿉한 냄새가 났다. 메주를 말릴 때 나는 쿰쿰한 냄새라 해야 할까..

'어.. 우리 할머니한테 이런 냄새가 났나? 뭐지?? ' 나도 당황했다.


한 번도 할머니에게 맡은 적 없는 냄새였고, 이후 할머니에게 계속 그 냄새가 났다.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 할머니는 내게 공부하느라 힘들지 않냐며 나의 안부를 묻고 내게 더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려고 했고 내게 더 많은 정을 쏟아주셨다.

예전 같으면 할머니를 폭 안아주며 할머니와 떨어지지 않는 명절을 보내고 왔을 텐데..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를 조금씩 멀리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맡던 할머니 냄새가 아니었고 낯선 냄새에 할머니가 폭삭 늙은 것 같았고 그 냄새가 싫었고, 그 냄새로 인해 할머니에 대한 행동들이 어색하게 되었다.

참 얄미운 철없는 손녀였다.

그래서 결국 할머니에게 예전처럼 가까이하지 않았고.. 할머니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생 때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임종 소식을 듣고 시골을 내려가 할머니를 봤을 때 정말 할머니께 미안하고 죄송하고 또 죄송했고 슬펐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안겼던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마지막까지 할머니에게 사랑만 받고 내 사랑은 다 드리지 못했던 내 행동과 모습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날 할머니 방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의 이상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만의 죄의식으로 더 죄송스럽고 슬펐다.

그 냄새는 정말 노인 냄새였을까.

정말 내가 할머니와 정을 떼려고 그랬던 행동이었고, 그 냄새는 그런 의미였었나..


계춘 할망의 한없는 손녀 사랑을 보며 내 할머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를 점점 멀리하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얼마나 내게 서운하셨을까.


할머니의 임종은 어느 날 갑자기였다.

예고도 없었고 징조도 없었다.

건강하신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사실에 인생무상, 허망함 모든 걸 느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셨을까.

직접 미리 준비하신 삼베옷을 입으셨었다.

그 사실이 더 마음 아팠다.

할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자신이 곧 떠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난 죄책감을 느낀다.

계춘 할망을 보다 그냥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또, 할머니에게 마음으로 빌었다.

할머니 그때 너무 죄송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제가 할머니를 멀리했어요.

그 마음 항상 죄송스럽고 아마도 제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장 후회스러웠던 행동이었고, 슬펐던 일인 것 같아요. 할머니 우리 다시 만날 때 꼭 내가 꼭 안아줄게요.



나태주 시인이 묘비에 이런 말을 쓰겠다고 하셨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할머니.. 우리도 만날 날이 오겠죠.

그때 꼭 제가 이 미안한 마음, 할머니가 서운했을 마음 모두 잊게 꼭 안아드릴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국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