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끝, 나의 온도에 대하여
텁텁한 풀 내음이 가득한 초록의 계절 사이로
촉촉한 이끼향을 닮은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바람의 결이 달라진 그 찰나, 가을이 도착했다.
햇볕은 여전히 여름의 빛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조금 느려져 있었다.
요즘의 마음은 가을을 닮았다.
감정을 들어 올릴 일도, 내려놓을 일도 없다.
보여지는 것과 보이기 위한 것,
그리고 가끔은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는 기분이랄까.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가을을 닮았다.
퇴사 후 한 계절을 온전히 보내고 나니,
내 몸 안의 온도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바쁘게 살던 시절, 내 하루는 늘 뜨겁고 날카로웠다.
마음 한쪽이 늘 불타오르거나
아니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지금은 그 온도가 사그라들어
미묘한 미지근함 속에 머무는 것 같다.
뜨겁지 않아도 살아있고
차갑지 않아도 또렷한 그런 상태.
아침의 빛이 천천히
방 안을 채우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
점심 무렵
창문을 열었을 때 부드럽게 스며드는 바람
해가 기울어 가는 속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저녁.
하루를 재촉하지 않는 이 리듬 속에서
나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가벼움’은 부실함과 같은 말이었다.
무게 있는 사람, 단단한 사람, 그게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볍다는 건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쓸모없는 짐을 내려놓았다는 뜻이라는 걸.
8월의 끝은 그렇게 나를 가르쳤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내 온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
다음 계절의 나는 또 어떤 온도로 살아갈까.
그때의 나도, 지금의 이 온도를 기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