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미드 '굿플레이스 시즌 4'와 책 '미움받을 용기 2')
대학시절 단짝 친구가 우리집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밤새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집안일부터 건강상태 연인과 결혼 계획, 하는 일, 재밌었던 일, 힘들었던 일 등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점점 내 눈은 반쯤 감겼고 비몽사몽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누워있던 친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침대에 걸터 앉았다. 잠이 안오는지 말똥 말똥한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구는 열애한지 4년이 되어간다. 요즘 애인의 여동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애인의 여동생은 연애초기부터 수시로 둘의 데이트를 방해했단다. 뻔히 오빠가 그녀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밥 먹자며 부르며 본인에게서 애인을 쏙 빼내간다고 했다. 본인을 혼자 남겨둔 채 여동생에게 가는 애인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쌓인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애인에게 여동생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관계에 불화가 생겨 서운함이 풀리지 않은 채 답답함만 가중된다고 했다.
그의 여동생이 친구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내용은 대체로 이러했다.
엄마가 그랬는데요. @@산 스님이 사주를 봐주셨는데 저랑 오빠랑 전생에 죽고 못사는 연인관계였대요.
그래서 현생에 지극히 아끼는 남매로 태어난거래요~ 오빠가 그래서 절 유독 잘 챙기는 거래요!
언니가 봐도 좀 그런 것 같아요??
굳이 이런말을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말. 이 외에도 싫은 이유들이 차곡 차곡 쌓였나보다. 예민함은 더해졌고 심기 불편한 상태로 애인을 만나면 짜증을 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4년 가까이 연애를 지속하고 있는 친구이기에 나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오래 만나는 걸 보면 너 oo이 많이 좋아하나보다~
진짜 우리 둘 사이만 생각하면 정말 좋거든?? 근데 요즘은 또 잘 모르겠어. 결혼까지 할 수 있을지~ 동생 일로 이렇게 계속 신경쓰이게 하면 결혼 못할 것 같아~
결혼은 너희 둘이 사는건데? 동생이 같이 사는것도 아닌데 뭐~ 동생이 애인없어서 그러는거 아냐?
오빠 여자친구한테 질투하나?
아~ 진짜 이런 고민 안하고 싶다. 다 잘 맞는 그런 사람 없을까?
시시콜콜 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척하면 척 알아채는 그런 운명의 상대 말이야!
걘 지금 내가 이렇게 서운해 있는 줄도 모를걸. 오래 만나긴 했는데 운명의 상대는 아닌 것 같아.
우리의 대화는 그녀의 고민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운명의 상대’라는 주제로 흘렀다. 운명의 상대가 있긴 있는 것이냐, 어디에 있는 것이냐, 대학교 2학년 시절 만났던 그 놈이 운명의 상대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있다, 없다, 있었으면 좋겠다. 정답은 없다, 모르겠다. 결국에는 졸리니 그만 잠이나 자자며 우리는 ‘운명의 대상이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늦은새벽 잠을 청했다.
영화나 소설 속에 이런 대사나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어느 날 운명처럼 그(그녀)가 찾아왔다.” 누구나 사랑에 있어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자 하는 환상을 품고 있기에 이런 장면들이 연출된다고 생각한다. 애인이 있음에도 운명의 상대를 찾는 친구처럼. 나 역시 어딘가에 내 운명의 상대가 있을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고백하자면 최근까지도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놓치지 않고 성숙한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으로 사랑의 기술을 탐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운명의 상대를 찾는걸까? 그리고 운명의 상대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 운명의 상대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기 시작할 때 우연히 펼쳐든 <미움받을 용기 2>에서 놀랍게도 ‘운명의 상대’를 다루고 있었다.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 2>는 전편<미움받을 용기>에 이어 아들러 심리학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행복해질 용기’를 갖기 위한 실천방법으로 인생 최대의 선택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을 통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 하는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받는 사랑에 익숙하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생존하기 위해 받는 사랑을 쟁취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학습하고 몸에 베었다. 받는 사랑이 익숙하기에 하는 사랑은 어렵고 나의 모든 것을 주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착각일지라도 ‘사랑 받는다는 보증’이 확보된 상태에야만 더 깊이 사랑하려 한다. 대부분의 연애는 아들러와 프롬이 말하는 사랑과는 다르다.
프롬이 말하는 ‘사랑한다는 것’에는 이러한 보장이 전혀 없다. 상대가 이쪽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그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가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타인의 과제가 된다. 아들러의 ‘과제의 분리’가 사랑에서 적용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먼저 사랑하기보다 익숙한대로 누군가가 나타나 사랑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기다린다. 운명의 상대를.
눈 앞에 사랑할 누군가가 있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이 사람은 안돼’라고 거부하고 ‘더 이상적이고 더 완벽하고 더 운명적인 상대가 있을거야’라고 말한다. 나 역시 성격이 맞지 않다는 핑계로 여러번 눈 앞에 있는 누군가를 흘려보냈다. 아들러는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운명의 사람’이라는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것이고 일종의 욕심, 욕망이다.
배우자와 함께 걸어온 긴 세원을 돌아봤을 때, 거기에서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는 있지만 운명이 사전에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랑하기로 선택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운명이 쌓아 올려진 것’이라는 책 속의 문장은 요즘 푹 빠져있는 미드 <굿 플레이스>에서 평생 소울메이트를 찾아 헤멘 치디에게 마이클이 건네는 대사와 연결된다.
If soulmates do exist, they’re not found, they’re made.
and then they get to work, building a relationship
하룻밤을 자고 떠나는 친구에게 읽은 내용을 말해줘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이런 저런 설명해도 내 말이 먹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미움받을 용기2 를 꼭 읽어보라는 말만 전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운명의 상대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