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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언 Jul 08. 2019

사과, 얼마나 잘 하고 계신가요?

받는 사람이 먼저, 사과편

스스로 배려심 쩐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늘 다른 사람 마음에 더 먼저 촉이 갔으니까.

하지만 이제 조금 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 게 진짜인지. 살다 보니 배우더라.

내가 내 마음 먼저 알고 나서 다른 사람 마음도 알아야 그게 진짜 마음씀이란 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힘들지 않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생각이 늘 먼저 튀어나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내 생각을 더 많이 할걸, 하고 후회하는 적이 많다.

남들에겐 착한 사람이라 보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게 아니라, 늘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먼저 의식하는 부족한 사람 같아 보였다. 나도 좀 더 이기적이고 싶고 냉정하고 딱 부러지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약해 보이지 않고 강단 있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고 싶었다.

사실,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연습도 했다. 무표정이나 단답형, 마음 닫기, 신경 끄기 같은 것들.


아이를 낳고 기르고, 회사에서의 포지션도 변해갈 나이가 되니 사람이 좀 변하긴 하더라. 집중할 시간이 줄어드니 짧은 시간에 무척 많은 선택을 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만큼 실수도 후회할 일도 생기곤 했다. 더불어 나의 마음은 여러 부분 너덜너덜해졌다. 또한 정하지 않았던 나의 기준의 날이 서기 시작했다. 그저 참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알게 된 거다.


얼마 전 짧은 이 영상을 보고, 처음엔 울다가 몇 번을 보며 얼마나 반성을 했는지 모른다. 사실 이 영상은 위드유의 진정한 의미를 어린 초등학생의 사례를 통해 알게 되는 진솔한 이야기다. 성교육 전문가 송경이 님의 짧은 강연으로 여러 생각을 교차하게 만드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위드유의 경각심보다 사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영상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그 초등학생이 말한 사과의 의미는 이렇다.


"사과는 받는 것이다.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사과해야 하는 것이 맞아. 그것이 진짜 사과야.
내가 어떤 고통인지 모르고 너희는 선생님이 시키니까 사과를 했어.
내가 사과를 가르쳐 줄게. 나는 아직 밤에  잘 때 잠옷 바지를 잡고 자. 팔이 아파 죽겠어. 그리고 아직도 악몽을 꾸지.... 내가 꿈을 안 꾸면 그때 사과를 받을게."


수학여행을 간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방에서 베개싸움을 하다가 바지가 벗겨졌다. 그 순간 여러 친구들이 "잡아!" "야 찍어!" "하하하" 그렇게 아이는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겪었고 선생님에 의해 성의 없는 사과를 받은 후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결국 마음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었고, 우연히 학교로 강의를 온 송경이 님에게 10분이란 시간을 요청하여 위와 같은 말로 본인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렇다. 사과는 하는 게 아니라 받는 거다. 받는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우리는 이 상식적인 일을 왜 이토록 쉽게 잊고 사는 걸까.

내가 어떤 불편을 겪었을 때,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형식적으로도 사과를 하지 않으면 속이 부글부글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때 나의 표정을 읽고 한번 더 묻거나 더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면 아프거나 기분이 나빠도 마음만은 스르르 풀린다. 하지만 그럴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원인제공자를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 그것은 사과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얼마 전 딸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딸아이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너의 엄마가 우리 언니에게 이렇게 했으니, 대신 네가 나에게 사과해."

읭??

딸아이의 친구가 집에 가서 엄마는 왜 그 언니에게 그렇게 해서 내가 사과를 하게 만드냐고 엄마를 나무랐고,  친구 엄마는 황당하여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전화를 받은 나는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딸아이의 행동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친구의 실수를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 사과를 요청한다. 자신이 이런 기분이고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불편하니 원인의 당사자인 친구는 자신에게 꼭 의식적으로라도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의 논리대로 친구들은 사과를 했고 그렇지 않은 친구와는 다투기도 했다.

딸아이에게 사과는 아주 큰 의미의 보상인 것 같다. 타인의 실수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

어떤 계기가 아이에게 이런 습관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사과는 이렇게 큰 의미를 차지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납득이 가지 않으면 사과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집을 부리곤 했다. 이 아이에게 과연 사과는 어떤 의미인 것일까.


이 에피소드는 친구 엄마의 실수가 명백해서 친구 엄마가 정말 언니에게 사과를 했고, 딸아이는 만족했으며 언니의 기분도 풀어졌다. 딸아이에게 나는 '사과는 당사자끼리 해야 한다'라고, 또 '언니가 너에게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라고 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어떤 것이 맞는 일인지 어떤 이야기를 해줬어야 하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오랜만에 딸아이의 성향과 나의 육아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았다. 타인과 다투거나 약간이라도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나도 모르게 '사과해!'라고 시켰던 나의 행동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했다. 친구와의 관계보다 언니의 기분을 먼저 생각한 딸아이의 기특한 심성을 칭찬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했다.


사과는 피해를 받은 당사자의 기분이나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 맞다. 형식적이고 감정이 빠진 사과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정도까지 사과는 꼭 해야 한다. 사과의 기준이 내가 아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아는 상식이다. 사과는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었을 때 진정한 사과가 마무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과, 얼마나 잘하고 계신가요?


정해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란 책의 구절로 마무리한다.

어른이 사과하면 아이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까? 어른의 권위가 손상이 돼서 그 다음부터 얘기가 먹히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추측도 부질없다. 게으르고 습관적인 생각이며 잘못된 생각이다. 온 체중을 실어 아이에게 사과해야 한다. 진심으로 사과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과, 배려, 공감 모두 내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먼저란 사실에 대해 겪은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같은 맥락이라 같이 느꼈던 것을 정리해보고자 했더니 글이 길어졌네요.

그래서 좀 나눠서 썼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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