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사람이 먼저, 배려편
"이게 다 실장님을 위한 배려잖아요. 왜 몰라주시는 거죠?"
기가 막혔다. 나는 그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자존감이 떨어진 뒤에 사표를 냈다가 반려받은 후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자 마지막 남은 최선을 다한 그다음이었다. 어그러진 프로젝트는 누구의 잘잘못도 아닌 외부적인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회사를 나와야 했었다. 그런 그때 나에게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나를. 위한. 배려. 라고.
그 즈음 매일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퇴근하는 밤 11시 택시 안에서 나는 매일 생각했다. 도대체 나를 위한다는 게 뭐지? 내가 받은 배려는 뭐지? 나도 모르게 나는 배려를 받았는데 왜 내 영혼은 너덜너덜해진거지?
며칠이 지나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었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굴 위한 배려인가.
배려는 받는 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류의 말이었던 것 같다. 그 말이 떠오르더니 복잡했던 머리가 휘리릭 정리되었다. 어쩌면 대표는 정말 나를 위한다는 생각에 큰 마음먹고 배려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배려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된 것이다. 아마 그분은 아직도 모르실 것이다.
다만 그 일을 통해 나는 배려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머릿속 깊이 인지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 후로 어떤 배려도 내 마음 편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절 못해 불편하던 내 마음도 오히려 간결해졌다. 오지랖 넓게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도 확실히 줄었다. 배려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씀이란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의 방향이 나를 위한 것인지,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는 배려를 받는 사람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한 배려일지라도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배려라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최근에 겪은 비슷한 일이 있다.
새로 부임한 부서장은 자꾸 일을 쳐낸다. 쌈닭이 되어 상사들과 싸우면서도 우리의 일을 줄여주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고맙다고 수고가 많으시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부서원들은 지금까지 하던 일이었는데, 굳이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망쳐가며 거부하고 싶지 않은 심정인 것이다.
새 부서장은 새 분위기를 만들고자 부서원들을 배려해주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배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전히 그분은 우리를 위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우리는 알아도 인정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말로 표현해 드려야 하는지, 스스로 인정하실 때까지 기다려 드려야 하는지 중간에 있는 나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그렇다. 배려는 나보다 받는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을 위해 내가 무언가 감내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마음깊이 이해를 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다.
배려, 잘 받고 잘 하고 계신가요?
받는 마음이 먼저, 시리즈 배려 편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살아가며 가슴으로 배운 이야기라 나누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