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암 인 엘에이!

by 채리

처음에 미국에 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환율과 물가 때문이었다. 호주 1달러는 미국에서 70센트 밖에 되지 않아 물론 다른 나라 돈이기는 하지만 단위가 같다 보니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컸다.

이동과 잠자리에 경비를 아낄 수 있다면 물가가 비싼 나라도 여행하는 데 있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도시와 도시 간의 거리가 멀다 보니 중간에 잘못 내렸다 하면 미아가 될 것 같아 히치하이킹은 애초에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영어가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호주와 캐나다에 있던 일 년간 의식적으로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쓰며 살아왔기 때문에 Couchsurfing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숙박 비은 무조건 카우치서핑을 통해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짧게 있었던 시애틀이었지만 시애틀에서도 2명의 호스트를 구했고 내가 L.A에 호스트를 못 구하고 있으니 그중 한 명이 L.A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한인 타운이 있다고 한국인 호스트를 찾아보면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애틀 호스트의 조언 덕분에 L.A에도 공짜로 잘 곳을 구했다. 하지만 문제는 L.A 중심가에서 한인타운까지 직행 버스도 없고 시간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38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L.A에서 한인타운까지 다시 1시간 버스를 타고 한인타운에 도착했다.

핸드폰은 있었지만 데이터는 없었다. 7시간이 늦어진 버스 덕분에 이미 약속시간에 늦었지만 한인타운에 도착해서도 바로 호스트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WIFI를 찾아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배회하고 있는데 중국인 한 명이 차에서 내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이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는데 그 집을 못 찾겠다. 그리고 내가 여행자라 연락할 수단도 없다고 이야기하니 자기가 직접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고 호스트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중에 지낼 곳이 없으면 자기 집에 와도 된다고 한다. 자신을 패션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중국인은 다음 주에 패션쇼가 있다며 그때까지 L.A에 있다면 꼭 오라며 연락처도 알려주었다.

중국인 덕분에 쉽게 집을 찾을 수 있었지만 너무 늦어 호스트가 화난 건 아닌 거 걱정했다. 하지만 호스트는 한국인 여행자가 온다고 자기 친구를 미리 초대하고 음식과 술을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은 한국인이었다. 호스트는 형으로써 나이가 어린 나를 조금이라고 더 챙겨주려고 했다. 맞벌이를 해 아침을 챙겨주지 못하니 출근길에 맥도널드에 들려 아침을 사주고 매일 저녁 늦게까지 함께 이야기했다. 호스트는 낮에 일을 해야만 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에게 미안해했지만 사실 혼자가 편하다.

L.A에 왔으니 일단 할리우드에 갔다. 미국을 여행하며 예상치 못한 볼거리에 놀란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TV에서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볼 때, 그리고 그게 내 노력으로 가능했다는 걸 생각할 때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코스프래를 한 사람들이 앵글 속으로 들어와 포즈를 취하고 나와 함께 사진도 찍자 고한다. 난 속으로 "와, 역시 할리우드라 그런지 흥이 넘치네"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함께 찍고 신나서 대화도 하고 가려고 하니 팁을 달라고 한다. 그 사람들의 직업이었던 것이다. 1달러를 주니 적어도 20달러는 줘야 된단다. 캡틴은 그거라도 받았어야 했었다. 내가 아까 줬던 1달러도 빼앗아 갈길을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레퍼가 내 옆으로 와 랩을 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자긴 신인 레퍼인데 유명하지가 않아 자기 앨범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노래가 담긴 CD를 줄 테니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들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며 기분 좋게 CD에 사인도 해서 나에게 건네주며 20달러를 달라고 한다. 정말로 눈뜨고 코베이게 생겼다. 웃으며 다가온 모든 이는 끝에 돈을 요구한다. 난 이미 캡틴한테 기분이 상했다. 내가 네가 그냥 주는 거 아니었냐 따지니 줬던 CD를 빼앗아 가며 그럼 돈 있을 때 찾아오라며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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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할리우드 거리의 문화라고 생각했던 코스프래도, 레퍼도 그냥 다 사기꾼들 이였다.
할리우드 간판은 생각보다 멀었다. TV로 보는 게 더 잘 보인다. 그래도 아쉬워 HOLLY WOOD 간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국인 아줌마가 말을 붙여왔다. 자기 딸이 L.A에서 5년째 공부를 하고 있다며 시작된 이야기는 근처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얻어 마실 정도로 길어졌다. 그리고 아줌마는 말나 온 김에 자기 딸도 한번 보라며 L.A에 있는 동안 친하게 지내라고 소개하여줬다. 물론 그 후로 연락을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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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후 길을 잃었을 때 만난 중국인의 집으로 옮겨 갔다.

그 중국인은 대학교를 엘에이에서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번에 말한 패션쇼는 졸업 전시회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는 잘된 일다. 취업을 준비한다는 뜻은 일이 없다는 것이고 일이 없다는 뜻은 하루 종일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차까지 있어 내가 혼자서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없는 곳 들까지 구경시켜 주었다. 전에 내가 혼자와 멀리서 보던 점 만하던 할리우드 싸인도 직접 가서 보았다.

솔직히 내방도 더럽다. 그런데 그 친구 집은 이 정도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더러운 걸 넘어 난잡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중국 부자였다. 차도 미국에 도착한 첫날 너무 불편해 그냥 다음날에 사버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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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있으며 어울린 사람이 한국인과 중국인뿐이다. 절대로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엘에이를 여행하며 미국보다 중국에 관련된 지식을 더 많이 얻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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