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인 '이주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2024년 미국에서 이사한 사람은 8%에 불과했다. 1960년대 매년 20%가 이주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주(州) 간 이동이다. 1990년대 4%였던 주 간 이주율이 2024년 2%로 반토막 났다.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젊은 층도 예외가 아니다. 25-29세 연령대의 20%만이 최근 이사했는데, 금융위기 이전 27%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다. 역사적으로 미국 사회의 활력을 담당해온 젊은 세대마저 한곳에 정착하고 있다.
이동성 급감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모기지 락인(lock-in)' 효과다. 팬데믹 시절 2.65%까지 떨어졌던 모기지 금리가 현재 7%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낮은 금리로 집을 산 사람들이 이사를 포기하고 있다.
실제 사례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7년 작은 집을 구입한 많은 가족들이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고 해도 월 대출금이 최소 2배는 뛸 것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이사 계획을 포기하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주택 소유자 이동률이 5.5%로 급락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계산이 아니라 생활 패턴 자체를 바꾸고 있다. 자녀가 늘어나거나 직장이 바뀌어도 주거 환경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구조 변화도 이동성 감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리치몬드 연준(Richmond Fed)의 존 존스(John Jones) 경제학자는 "맞벌이 부부는 모든 그룹 중 주간 이동률이 가장 낮다"고 분석한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1996년 여성 정규직 비율이 57%였지만 2024년 61%로 늘었고, 여성 임금도 남성과의 격차가 23%포인트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한 사람(주로 남성)의 직장 이전에 따라 가족이 함께 이주했다면, 이제는 두 사람 모두의 커리어를 고려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성별 임금 격차 축소가 1981-2012년 가족 이동성 감소의 3분의 1을 설명한다고 분석한다. 두 사람이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부부일수록 이주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다.
리모트 워크 확산은 이동성에 복합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어디서나 일할 수 있게 되어 이동이 자유로워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굳이 이사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다만 소득 계층별로는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연소득 15만 달러(약 2억 1천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16%가 지난해 이사했는데, 이는 2019년 대비 39% 증가한 수치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리모트 워크가 가능한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더 저렴하고 쾌적한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리모트 워크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이사 비용과 위험 부담 때문에 현 거주지에 머물고 있다.
주거비 부담 증가는 젊은 층의 독립 패턴도 바꾸고 있다. 2000년 25-34세 중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10%였지만, 2023년 15%로 50% 증가했다.
독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타지역으로의 이주는 더욱 요원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자금 부채를 안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200통 넘는 이력서를 내도 이사비 지원 없는 타주 취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 되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지역 간 경제 격차 축소도 이동성 감소에 기여하고 있다. 하버드 연구에 따르면 1800년대 후반부터 지속되어온 주들 간 임금 수렴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과거에는 캘리포니아나 뉴욕으로 이주하면 확실히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 차이가 크지 않다. 높은 생활비를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인 경우도 많다. 노동시장이 지역적에서 전국적, 나아가 국제적으로 확장되면서 특정 지역으로의 이주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기업들도 직원 이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과거 대기업들이 제공하던 '기업 이전 패키지'가 비용 절감과 리모트 워크 확산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동시에 2021년 사직률 급증 이후 고용 시장이 위축되면서, 많은 근로자들이 현재 직장에 매달리고 있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동성 급감은 단순한 통계적 현상을 넘어 미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시카고대(University of Chicago) 창타이 셰(Chang-Tai Hsieh) 교수는 "비싼 주거비 때문에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는 근로자가 줄어들면서 미국 GDP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손실을 넘어 사회적 분열도 심화되고 있다. 지역 간 이동이 줄어들면서 미국인들이 점점 더 동질적인 커뮤니티에 갇히게 된다.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가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젊은 층이다. 대학 졸업생들이 전국 어디든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이 미국 사회 활력의 원천이었는데, 이제는 학자금 부채와 높은 주거비 때문에 고향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회의 땅에서 고착화의 땅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동성 급감 현상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역시 서울 집값 폭등으로 인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의 이주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시도 간 이동률은 4.3%였으며, 2023년에는 4.2%로 더욱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의 '지방 탈출'이 경제적 이유로 막히고 있다. 서울 직장을 구해도 보증금과 월세 부담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대로 서울에 정착한 청년들도 높은 생활비 때문에 타지역 취업 기회를 외면하게 된다. 미국의 '모기지 락인'과 유사하게, 한국에는 '전세 락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과 사회 이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최적의 일자리를 찾아 이동할 수 없게 되면서, 개인의 성장 기회와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동시에 저하될 위험이 있다. 미국과 한국 모두 주거비 문제가 사회 이동성의 핵심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집값 폭등과 리모트 워크가 미국인들을 집에 묶어놓더니, 기회의 땅이 고착의 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