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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Jan 04. 2021

일탈, 일상을 낯설게 하기, <크리스마스의 악몽>

영화 감상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원제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이다. 보다시피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일어난 소동과 전말에 관한 얘기이다.


 할로윈 마을의 유명인 호박 대왕 잭은 성황리에 할로윈 행사를 마쳤음에도 기쁨보단 허탈감, 무기력함을 느낀다. 마을 주민들의 잭에 대한 찬사와 성원에도 그는 홀로 고뇌하고 한탄한다. 허무에 사로잡혀 멍하니 걷던 그는 얼떨결에 크리스마스 마을에 당도한다. 크리스마스의 신선함, 따스함, 정겨움 등에 깊이 감동한 그는 삶에 대한 활력과 열정을 되찾는다.


 첨탑에 틀어박혀 크리스마스에 대해 고민하던 잭은 종국에 스스로가 크리스마스를 개최하고 그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그는 산타클로스를 납치하고, 뼈다귀 루돌프를 만들고, 어울리지 않는 산타복을 입고 선물을 한 아름 쌓고 눈썰매를 끌며 인간들의 마을로 향한다. 그는 집집마다 선물을 나누어주지만 그가 준 선물들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할로윈제(製)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질겁하고. 급기야 흉측한 할로윈제 선물들은 사람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결국 신고를 받은 군 당국이 포를 쏘아 잭을 격추하면서 악몽은 끝이 난다.


 잭의 고루한 일상처럼 대개 우리의 하루는 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의 나날은 단조로울 것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매일은 쉬이 지루하고 때론 허탈하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고 맡은 바 역할이 있다. 매 하루는 과제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의 반복이다. 처음 일을 하며 느꼈던 기쁨과 활력은 달과 해를 거듭하며 식어만 간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엷은 우울감이 뒤덮인다. 나와 달리 사람들은 여전히 기뻐하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어떤 이들은 나의 권태를 태만이라 꾸짖을지 모른다. 엷은 우울은 더욱 짙어진다.


 그래서 때로 우리에게는 영화 속 잭처럼 일탈이 필요하다. 잭은 본업인 할로윈은 까마득히 잊고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면서까지 크리스마스 축제를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몰두한다. 그러다 실패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삶에 대한 열정과 활력을 회복하고 내년에는 더 무서운 할로윈 축제를 기획하기로 마음먹는다.


 잭은 익숙한 일상의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탈을 감행한다. 그는 지정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영화에는 할로윈 마을과 크리스마스 마을뿐만이 아니라 부활절 마을도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 마을을 대표하는 축제를 개최하는데 열과 성의를 다한다. 이는 그들의 본분이자 과업이다. 할로윈의 잭이 크리스마스를 꾸미는 것은 몸에 맞지 산타복을 입고 기괴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일 테다. 이러한 일탈과 이탈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기도 어렵고 호응을 얻기도 힘들다. 외려 질타를 받거나 배척받지 않으면 모를까? 특히 현실은 동화나 영화가 아니기에 일탈과 이탈은 용납되지 않는다.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영화 속 잭의 일탈은 단지 판타지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일탈은 삶을 낯설게 하는 것이다. 익숙하면 진부하나 낯설면 새롭다.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작은 일탈이나 이탈일 수 있다. 정확히는 거창한 모험이기보단 소소한 시도이다. 그 시도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제 자신의 삶에 소중함을 느끼고 활력과 열정을 되찾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 허물 벗듯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할 것이다. 결과가 다소 좋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잭처럼 여전히 우리를 환대해줄 이들과 돌아갈 곳이 있으니깐.


 익숙한 일상이 지루하다면 소소한 일탈과 이탈을 통해 삶을 낯설게 해 보라. 마치 이 영화가 할로윈이 아닌 크리스마스 영화이듯.


(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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