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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Jan 05. 2021

사실과 마주함으로써 용서하기, <인셉션>

영화 감상

 영화 <인셉션>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수히 오가며 현실에는 없는 환상적이며 신화적인 면면을 드러낸다.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되며 시공간적 혼란을 준다. 한편으로 영화의 주인공 코브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연상케 한다. 코브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타인의 생각을 훔치거나 반대로 심을 수도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인셉션은 대상의 무의식, 그 기저에 생각을 심어 의식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추출보다 몇 배는 힘들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코브는 인셉션을 실제로 해낸 유일한 추출자이자 최고의 추출자이다. 또한 코브는 범죄자다.


 수년간 코브는 아내를 살해한 명목으로 쫓겨 다니고 있다. 그는 자녀들 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코브의 표적이었던 사이토는 코브에게 죄를 사하고 벌을 면해줄 테니 자신을 따르라고 한다. 법적으로 코브는 그의 무죄를 규명할 수 없기에 사이토의 제안은 그를 구명하는 유일한 길이나 다름없었다. 헤라클레스가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고 죄를 씻기 위해 헤라로부터 과업을 받듯 코브는 죄와 벌을 사면받기 위해 사이토의 제안을 수락한다. 사이토의 목적은 경쟁사의 상속인인 피셔에게 기업해체에 관한 생각을 심어놓는 것이었다.


 코브는 동료들을 모은다. 대상의 무의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꿈의 설계자가 필요하다. 설계자는 꿈을 미궁과 같이 복잡하게 만들어 대상의 무의식으로부터 추출자를 보호해야 한다. 코브의 아버지인 마일스는 제자인 아리아드네를 소개해준다.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 라비린토스를 빠져나오는 것에 일조하였듯이 아리아드네는 영화 내내 코브의 길잡이이자 이정표가 되어준다.


 인셉션은 대상의 무의식의 기저에서 이루어지므로 코브와 동료들은 세 차례 거듭 꿈을 꾼다. 꿈을 연이어 꾸면서 그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더 깊은 꿈의 공간으로 간다. 빗속의 도심, 호텔, 설산의 요새에서 코브와 동료들은 무의식으로부터 공격받는다. 그런데 이들은 피셔가 아닌 코브의 무의식인 맬이었다. 코브는 꿈의 심층으로 가며 드러내지 않던 무의식과 마주한다.


 코브가 인셉션을 성공한 대상은 바로 그의 아내 맬이었다. 꿈의 가장 밑바닥인 림프에 도달한 코브와 맬은 그곳에서 수십 년을 보냈고, 그 기나긴 세월에 맬은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코브는 자녀들에게 돌아가야 했기에 맬에게 ‘지금 서있는 공간은 꿈이므로 죽음을 통해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심는다. 문제는 현실에서도 맬이 이와 같이 생각했고 결국 코브를 자신의 살인범으로 몰아가며 동반자살을 기획한 것이었다. 코브의 인셉션이 그의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아내에 대한 그의 죄책감과 사념들이 무의식인 맬로 빚어져 사사건건 그를 훼방해왔다. 스스로가 내리는 형벌이었다.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코브가 망연자실하여 포기할 때 아리아드네는 실타래를 풀듯 미궁을 빠져나갈 방법을 제시한다. 코브와 아리아드네는 림보로 가고 그곳에서 맬을 만난다. 코브는 심연 속에서 드디어 눈앞의 맬이 자신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죄책감과 슬픔이 빚어낸 상념임을 깨닫는다. 내면의 심연에 닿아 비로소 코브는 자신의 과오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주한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계기가 된다.


 오디세우스가 현실과 환상, 신화의 세계에서 고난과 역경을 부단히 겪은 끝에 그의 나라 이타카로 돌아가듯 코브 역시 긴 여정 끝에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는 아버지의 인도에 따라 집으로 되돌아가고 그토록 고대하던 두 아이들과 만난다.


 때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위안하고 용서할 수 있다.


(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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