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설 Mar 20. 2023

냉혈한을 위한 변명

관계에 관한 단상


 마치 너른 사랑으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단 착각에 빠진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어떤 상황을 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덜어내더라도 상황도 사람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더 이상 덜어낼 것조차 없을 때, 착각에 빠진 이들은 도리어 연거푸 그 일을 계속한다. 그러한 행동은 그에 대한 미련과 스스로에 대한 불인정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이다.


 문제는 그 미련한 이들이 ‘버림받았을 때’이다. 그들은 자신이 버림받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희생과 헌신을 도맡아 했을 뿐인데, 그가 속한 ‘우리’(들)의 관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을 뿐인데, 왜 당신들은 나를 저버리고 나를 원망하는가? 그들이 버림받은 이유는 그가 벗어나야 했을 상황에, 그가 버렸어야만 하는 이에게 계속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그들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버리지 못한 이에게,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 더욱 붙들린다. 그는 자신이 파놓은 수렁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 들어가면서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이와 상황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원망하고 개선치 못할망정, 이 고난을 함께 하다 벗어난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다 거둔 이에게 원망과 증오의 화살을 돌린다. 표독한 말로 저주를 보낸다. “참 냉혈하다.”


 그들을 버린 사람은 냉혈한인가? 그렇다. 그는 냉혈한이다. 당신들이 바라보는 그는 당신이 바라는 대로 날 때부터 피가 얼어붙은 인간일 것이다. 당신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인간. 끝내 고통 받는 당신을 버린 인간. 그러나 냉혈한들도 필시 처음부터 차가운 피가 흐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 피를 식게 한 게 오롯이 그 자신은 아니란 것이다. 그들 또한 처음에는 그들이 버린 이들과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위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곁에서 함께 노력하면, 더 많이 노력하면 상황은 변화하고 사람도 기꺼이 감화시킬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상황도 사람도 바뀌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자 깨달았을 뿐이다. 더는 수렁 속에서 이들과 함께 웃을 수는 없다는 것을, 더는 이들과 함께 울을 수조차 없다는 것을. 수렁이 묫자리가 될 수는 없었으니깐.


 냉혈한이 된 그는 마지막으로 간곡히 버릴 것을 권하였다. 벗어날 것을 읍소하였다. 당신의 그 사랑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며, 결국 끝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무색하게도 그의 호소는 가닿지 않았다. 귀를 막은 이들에게, 듣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더 이상에 말은 무의미했다. 그는 침묵하기로 하였다. 그는 결단을 내리기로 하였다. 그에게 정리는 극적이었거나 조용했을 것이다. 


 그가 버린 이와 그가 버린 이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만 보내고 어떠한 도움도 없이 잰체하는 것들의 손가락질과 삿대질에, 날선 비방과 저주에도 냉혈한은 들끓다 못해 가라앉음으로 수렴하는 제 마음을 거죽 위로 드러내지 않았다. 차마 못 다한 말을 꺼내더라도 피차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행여나 자조 섞인 웃음마저도 냉소로 비춰질 수 있기에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낮게 읊조렸을 것이다.


 ‘당신 말마따나 내 혈관 아래에는 청록색 피가 흐른다. 그러나 단지 이제는 당신과 내가 반대되는 곳에 섰을 뿐이다. 빨강의 보색은 청록색이다. 나는 차가운 피가 흐르는 초록 괴물이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여겨도 좋다. 다만 내가 바라던 것은 나의 평온과 당신의 평안이다.’


 냉혈한의, 냉혈한을 위한 변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과 감수성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