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설 Dec 16. 2020

<반도>

영화 감상

영화 <반도>를 본 지는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글은 이제야 쓴다. 왜냐하면 글을 쓸 만큼 뭔가 뚜렷한 게 없기 때문이다. <반도>는 밋밋하다. 전작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많다. 볼거리는 카체이싱 장면 정도. 조명탄을 이용한 감염자 유도. 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어떻게 써볼까?

영화 <반도>는 전작인 <부산행>의 4년 뒤이다.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하며 한국은 멸망한다. <반도>를 탈출한 이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난민이 되어 정처 없이 표류하고 <반도>는 주변국들로부터 봉쇄당한다. 사실 반도는 반도가 아닌 섬이다. 북으로는 북한이 대대적인 포격을 가해 감염자들을 막았고, 생존자의 출입도 불허한다. <반도>는 고립무원의 섬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무인도 탈출기랄까?(재미없는) 한편, 치유기이다.

정석은 군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난민 수송선에 탑승할 기회를 얻었고 가족들을 무사히 배편에 태운다. 일본으로 가는 배는 뚜렷한 이유 없이 홍콩으로 항로를 바꾼다. 정석 누나의 말을 빌리면, 진작에 일본에 도착할 시간에 말이다. 배가 제때 도착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객실에 있던 난민 한 명이 발병한다. 정석의 조카가 감염원에 물리고 객실 안은 쑥대밭이 된다. 뒤늦은 정석은 감염된 조카를 떠날 수 없는 누이를 남겨두고 객실 문을 '닫는다.'

정석의 시간은 4년 전 그 시점에 멈춰 있다. 정석의 매형인 철민도 그렇다. 그들은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홍콩의 슬럼가에서 부랑아로 산다. 정석은 철민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철민은 이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슬럼가 갱 두목은 철민과 정석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를 준다. 과거에 매어있는 그들에게 새 삶을 살아볼 기회를. 정석은 말리지만 철민은 고집한다. 철민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원한다. 그렇게 그들은 섬으로 돌아온다.

황량한 폐허의 섬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신은 우리들을 저버렸다.'라는 낙서 내지 절규다. 반도는 외부로부터 고립되었다. 도움을 주려는 외부의 손길은 없었다. 구원의 손길도 구명의 활로도 없다.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주변국들은 반도를 봉쇄했고 반도는 섬이 되었다. 생존자들은 감염자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했고, 마찬가지로 생존자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섬의 생존자들은 서로 간에 섬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단결하기보단 단절하였다.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은 타락하여 생존자들을 잡아 유희의 제물로 삼는다. '서로가 서로를 저버렸다.' 아귀와 각다귀 떼의 소굴이다.

정석은 철민을 구하기 위해 군인들의 본거지로 침입하고 이내 전투가 벌어진다. 정석이 위험에 처했을 때, 철민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정석에게 총기를 건네주고 몸을 내던져 그를 보호한다. 철민은 시도한 것이다. 생전에 그가 정석에게 얘기했듯이 과거 수송선에서 내지 못한 용기를 낸 것이다. 철민 역시 정석에게 부채를 갖고 있다. 철민이 아내와 아들을 잃었듯, 정석 역시 누이와 조카를 잃었으니깐. 철민은 정석을 구하기 시도함으로써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가족으로서 정석과의 유대를 회복한다.

영화 말미 정석도 시도를 한다. 그가 말하듯 '상식적'이지 않은 시도를. 정석은 과거 수송선에 탑승하기 위해 피난길에 올랐던 때, 외면한 민정의 딸에게 도움을 받는다. 민정은 정석의 사과에 정석에게 아이들을 끝까지 지킬 것을 당부한다. 정석은 민정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되돌아간다. 구한다. 과거 자신의 가족은 지키지 못했지만, 민정의 가족을 구함으로써 부채를 해소한다. 철민과 마찬가지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용서한다.

'유대(有待)'. 인간의 몸은 의복과 식량 따위에 기대어야 살 수 있는 덧없는 것이란 말이다. <반도>에서 다수에 생존자들은 먹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 살아남은 이들은 인간의 유대를 벗어나 서로 간에 유대(紐帶)를 회복함으로써 , 만듦으로써 살아남는다.

<반도>에서 각축장인 반도는 섬이다. 그뿐만 아니라 반도에서의 사람도 저마다 섬이다. 불신과 위협으로 단절한 상황에서 상식은 '나를 우선하는 것', '타인을 믿지 않는 것'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고립하고 자멸한다. 섬을 벗어나는 방법은 마냥 외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과거의 아픔을 묻고 불신의 눈길을 거두고 외부로 손길을 내미는 것이 아닐까?

유대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유대를 만드는, 연대하는 것이다. 준이는 함께 했기에 지옥이 아니었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붉은 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