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글에서 퇴직 후 제2의 삶을 포기한 것에 대하여 썼다. 3년 전에 양봉을 시작하였다가 며칠 전에 그만두었다. 그 이유는 내가 노력하여도 양봉이 잘 되지 않고 나의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실 내가 양봉을 포기한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손자를 돌보는 것이다. 나의 친손자는 올해 7살이다.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은 자기 손자가 예쁘다고 느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손자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잘 생겼다고 칭찬을 하곤 한다. 그리고 말을 붙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나의 손자는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느끼는 것과 다르게 양육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감각이 너무 예민하여 감각통합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로는 보통 아이들의 감각을 1로 보면 나의 손자는 1천 정도로 예민하다는 것이다. 조금 예민한 것이 아니라 매우 예민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손자가 태어나면서부터 만 3년 동안 직접 키웠다.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아들 내외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손자는 우리 부부와 함께 자고, 먹고 놀고 하였다. 손자는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 다른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모방을 하지 않았다. 죔죔, 곤지곤지를 시켜도 따라 하지 않았다. 걸음도 19개월째 걸었다. 12개월 정도 되었을 때 처음 걸음마를 하다가 넘어진 후, 아무리 걸음마를 시켜도 다시는 걷지 않다가, 19개월이 지나서 걸었다. 이유식도 잘 먹지 않아서 아내가 무척 고생을 하였다. 만 2살 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손자의 이러한 특이점을 동네 아동병원 의사나 심리 담당 교수에게 말하여도 괜찮다고 하여서, 우리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만 3돌이 넘은 후, 지방으로 이사를 가고, 손자 돌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보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손자를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하여, 손자가 어린이집에서 나왔다. 우리 부부는 지방에 있었지만, 그 소식을 들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에 진료를 받았다. 담당의사는 6개월 정도 진료를 하면서 지켜본 후, 감각이 너무 예민하여 감각통합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손자를 돌보다가, 둘 다 회사에 복귀하면서, 우리 부부에게 다시 도움을 청하였다. 담당의사의 말이, 우리 손자와 같이 감각통합이 되지 않은 아이는 불안하게 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각이 너무 예민하여 감각통합이 되지 않는 아이는 대부분의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아, 학습을 할 수 없고, 그에 따라 사회성과 도덕성은 물론 인지 기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아이는 불안하게 되면, 더욱 시도를 하지 않아, 자폐증과 같은 자기중심성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아내는 2017년 봄부터, 나는 그 해 가을부터 서울과 지방을 오고 가면서 교대로 손자를 돌보고 있다. 나는 일요일 저녁에 서울로 가서 수요일 저녁까지 돌보다가, 아내가 수요일 저녁 서울로 오면 나는 지방으로 오고, 아내는 금요일 저녁에 지방으로 온다.
손자가 감각통합이 되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후, 심리센터에 가서 운동, 언어,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사실 아내의 건강도 좋지 않아, 외부로 다니는 손자의 치료는 내가 손자를 돌보는 기간인 월, 화, 수요일에 하고 있다. 그래서 손자와 버스와 기차를 많이 타고 다닌다.
손자는 현재 7살이지만, 현재도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으려 하고, 옷도 입지 않으려 하고, 약도 먹지 않으려 한다. 문을 열고 닫으면서 쿵쿵 소리를 내고, 변기의 버튼을 계속 눌러 물이 계속 흐르게 하고, 물건을 던지고, 내가 화장실에서 용무를 볼 때조차 따라 들어와 나가지 않으려 한다. 어떤 때는 변기에 물건을 넣어 변기통이 막히게 하는가 하면, 장난감을 빠뜨리기도 한다.
손자가 이런 것을 하여도 될 수 있으면 화를 내면 되지 않는다. 손자를 불안하게 하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손자는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 나의 경우, 화를 내면, 보통 5분 안으로 나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손자를 안아주면서, 할아버지가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너도 그런 것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손자는 나에게 꼭 안기면서 말을 잘 듣는다.
양봉을 포기하면서, 손자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적은 것은 양봉의 포기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양봉이 나의 생각과 다르게 잘 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양봉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손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손자와 같은 경우는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정상으로 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직 손자를 보아야 할 기간이 7년은 넘어야 할 것 같다.
손자를 돌보아, 손자가 건강하게 정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양봉을 하는 것보다는 더 중요하다. 물론 아내도 내가 양봉을 포기하도록 권유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양봉을 과감히 포기하였다. 양봉을 포기하는 대신, 손자를 돌볼 때는 더 손자를 사랑으로 대하고, 또 읽고 싶은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것이 내가 즐겁고 행복하는 사는데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나는 생각하였다.
지난 2월까지는 내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손자를 돌보았고, 대신 아내는 지방에서 쉬게 하였다. 3월부터는 다시 나는 월화수 손자를 보고, 아내는 수목금 손자를 본다. 이번 주에는 수요일 저녁에 지방에 와서, 내가 취미생활로 하는 사군자도 하였고, 집에서 주역 책도 읽었다. 손자를 보지 않은 기간에는 지방에서 나의 삶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