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퇴직 후 삶을 제2의 삶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삶을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통 사람들이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였을 때, 60살에 퇴직을 하면, 20년을 더 살아야 한다. 20년의 세월은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2009년 7월에 퇴직을 하였다.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나도 퇴직을 하면서 제2의 삶을 위해 계획을 세웠다. 그 이유는 일을 하지 않을 경우, 무력감이 들 수 있고, 삶에 의미와 생동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제2의 삶을 계획하면서,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하였다. 하나는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 하나는 적더라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퇴직 후 나는 몇 가지 계획을 세웠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처음 세운 계획은 한문 번역이었다. 한국고전번역연구원 등에서 역사문헌이나 문집 등 한문으로 된 것을 번역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위해 국사편찬위원회, 성균관 한림원 등에서 한문 공부를 하였다. 퇴직 후 3년간 즉 2012년까지 하였으나,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 한문 번역을 포기하였다.
한문 번역을 포기한 후, 새로운 재충전을 위해 아내와 함께 2, 3년 정도 국내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경치가 좋고 살기가 좋은 곳을 찾아, 원룸이나 여관 등을 얻어 1개월이나 6개월 등 단기적으로 살면서, 그 지역을 여행하고 또 그 지역의 생활과 문화도 경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지역 문화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선택한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2012년 10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차에 싣고 서울에서 완도로 가, 완도에서 배로 제주도로 갔다. 친구로 소개로 원룸을 얻었다. 제주도는 섬으로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마을, 들판, 담, 나무, 말씨 등 많은 것들이 같은 나라이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는 한라산도 등산하고, 들판 길과 둘레길도 걷고, 귤밭에서 귤도 따고, 바닷가에서 조개도 주었다. 친구나 친지가 오면 나의 차로 제주도 구경을 시켜주기도 하였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내도 좋아하였다. 아내는 1년 정도 제주도에서 살자고 하였다. 나도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힐링의 생활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1월 경 나와 아내가 둘레길 1코스를 걷다가, 내가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 골절상을 당해,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제주도의 여행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특히 며느리 아이가 2013년 5월 출산 예정으로 우리 부부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할 수 없이 아내와 나는 2, 3년의 국내여행 계획을 포기하고 2013년 2월 서울로 올라와야 하였다. 이에 따라 2, 3년의 국내여행도 실패하였다.
손자가 2013년 5월에 태어났다. 아들 내외가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아이를 보아야 하였다. 3년 동안 정말 열심히 손자를 보았다. 또 2015년 2월에 손녀가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2016년 아들 내외에게 우리 부부도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에, 손자 손녀를 계속 볼 수 없다. 이제 너희들의 자식들은 너희들이 키우도록 하라고 하였다. 아들 내외도 우리 부부가 3년 동안 열심히 손자 손녀를 키운 것에 감사하면서, 아이돌보미를 구하고, 육아휴가를 맡아 키우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부부는 2016년 8월 작은 땅을 마련하고, 아파트를 구해 제천으로 내려왔다. 나는 제천에서 양봉을 하기로 하였다. 사실 그전에 양봉하는 사람을 찾아가 일을 도우면서 양봉 기술을 어느 정도 배웠다. 2017년 3월 벌 10통을 구해 양봉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벌의 세력이 잘 늘어나지 않았다. 전에 배운 지식에다, 제천 와서 사귄 양봉인에게 문의하면서 벌들을 관리하였으나, 벌들의 세력이 좋지 않았다. 벌들의 세력이 좋지 않다 보니, 벌통 수가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꿀도 채취하지 못하였다. 꿀을 채취하기 위해 채밀기까지 준비하였으나, 1년에 2병의 꿀도 채취하지 못하였다.
2년 넘게 양봉을 하면서, 벌들의 세력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하니,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첫째는 내가 벌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벌들의 상태를 분석하여 시기에 맞게 설탕물을 주고, 병에 대한 약품 처리를 하며, 또 더위와 추위, 습기 등에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런 기술에 부족할 수 있다.
둘째는 양봉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양봉장은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야 하고, 또 햇빛이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양봉장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이었다.
지난 2월 말 봄벌 깨우기 하면서 화분떡을 넣어주고 설탕물을 주었다. 월동을 한 것을 들어내고 벌통문을 열어보니, 7통 월동을 한 벌통 가운데 2통에서 벌들이 완전히 죽고, 나머지 5통에서 벌들이 살아 있었다. 지난해 겨울 월동을 준비하면서 벌들의 세력을 강하게 한다고 12통 벌통 가운데 약한 것을 강한 것에 합봉하여 7통의 벌통만 남겼다. 그런데 또 2통의 벌통이 실패하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속이 상했다.
괜히 마음이 편하지 않고 가슴이 뛰었다.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당시에는 ‘벌들의 세력을 강하시키기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할까?’에 마음이 집중되었다. 벌들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소를 옮길까? 현재 있는 장소 주변에 2m 정도의 울타리를 쳐서 바람을 막아볼까? 아니면 현재 있는 그대로 다시 한 해 벌을 키워볼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울러 내가 아는 양봉가를 양봉장으로 초대하여 문제가 무엇인지를 문의하는 것도 생각하였다.
일주일 정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세 가지 해결방안을 생각하였다. 하나는 양봉장을 옮기는 방법, 다른 하나는 현재 양봉장 주변에 담을 높게 치는 방법, 마지막 하나는 지금 현재 양봉을 포기하는 방법이다. 아내와 상의하였다. 아내는 말했다. 노력하여도 양봉이 잘되지 않은 것은 나에게 양봉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양봉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결심을 하였다. 그렇다. 내가 노력하여도 양봉이 잘되지 않은 것은 양봉이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양봉을 한 것은 일거리를 갖고, 또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다. 양봉 자체가 나의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또 나는 현재 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데는 크게 문제 되는 것이 없다.
퇴직 후 지난 10년 동안 나는 제2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고민도 하고 번민도 하였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것이 다 실패하였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지는 않다. 내가 의도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실패함으로써 좌절하거나, 분노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다른 대안을 선택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지 않았던 것은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나의 삶을 통합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내가 행복에 관한 것을 공부하고 나 스스로 나의 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긍정적이고 통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대안을 찾아 삶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