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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령 May 01. 2024

26. 어린이는 옳은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1학년의 주장은 아직 서투르다. 교직 3년차 애송이 교사의 서투른 주장을 바꿔준 건 1학년 아이들이다.


작지만 큰 꿈을 꾸는 학교에서 23명 전교생 모두 모이는 회의를 기획했다. 미리 안건을 게시하고 학년별 수준에 맞는 사전 준비 활동을 거쳐 전체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의 모든 어른들은 약속했다.

아이들이 결정한 내용은
어떻게든 만들어 주자고.


1학년 5명과 연습해보니 경청하는 자세에 우리의 결정은 우리가 지킨다는 마음까지 나름 갖춘다. 그러나 타당한 이유를 덧붙이며 의견을 제안하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5월 안건은 ‘우리가 만드는 운동회’였고, 함께 종목을 결정하니 회의가 활발하다.

우리반 녀석이 보물찾기를 제안한다. ‘운동회에 보물찾기?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채택되긴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장 높은 득표로 결정된다.


마지막 종목인 보물찾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어놓고 어른들은 운동장에 널부러진 물품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 깨끗이 정리한 후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에 누가 많이 찾았나 궁금한 아이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운동회 반성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보물찾기’였다.


12월 안건은 ‘학교가 바뀌어야 할 점’이었다. 우리반 녀석이 손을 번쩍 들어 외친다.


학교 버스가 불공평해요.
나는 1등으로 타서
아침에 제일 오래 타는데,
집에도 제일 늦게 도착해요.
매일 6시에 일어나는 게 바뀌질 않아요.
아침이 깜깜한 요즘은 무섭고요.”



선생님들이 정한 건
우리가 바꿀 수 없습니다.
또 바꾸면 다 헷갈리니까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똘똘한 녀석의 이 말 덕분에 어른들이 정신을 차렸다. 급히 회의에 오셔서 꽤 길어지는 아이들 이야기를 쭉 들으신 통학버스 운전 선생님께서


바꿔보겠습니다.”

하신다. 학기에 따라 바뀌는 통학노선으로 인한 큰 혼란은 없었다.


아이들이 잘해야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틀에 박힌 내 생각을 걷어내니 그들의 문제의식은 날카롭고 해결방안은 참신했다. 이후 나는 8살의 말을 새긴다.

 

방정환 선생님의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읽고 ‘어린이날 선언문’을 만들다 묘하게 맞는 말들이라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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