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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령 Apr 28. 2024

25. 손에 하지 말랬지

초등1학년 미술 수업 반성

누워도 잠들지 못한다.

1학년을 가르치면 이 병이 도진다.

오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보채고 화낸

내 모습이 떠오르면 이불을 걷어찬다. 마음먹고 판을 벌렸으면서 내가 나를 참지 못해 아이들 흥을 싹둑 끊어낸 날, 후회가 가장 크다.


무한한 상상력이 아이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술은 중요하다. 그러나 두렵다. 작품 완성보다 묻힐까 쏟을까에 더 애가 타 내 목청을 잃을까봐.


가을하면 생각나는 단어를 잘라 도화지에 고정하고, 가을을 표현할 색물감을 스펀지에 묻혀 배경으로 찍어낸 후 글자를 뜯어내는 활동을 계획했다. 혹시나 생길 불상사에 대처하기 위한 나름대로 준비까지 마쳤기 때문에 시작은 순조로웠다.


여러분의 눈에 담긴 세상을
여러분의 생각대로 표현한 작품이므로
모두 다 맞아요.


내 눈으로 바라본 색을 만들어 찍으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글자를 잘라내고 고정시키는 것까지 통과, 이제 물감이다. 심장이 뛴다. 한 바퀴 돌면서 부글부글 거리다가 한 녀석을 본 순간 폭발했다.

손에 하지 말라고 했지!!!!!!!!”


그때부터 교실에 쏟아부은 잔소리들을 다 적을 수 없다.


선생님 이제 미술 안 할 거다!!!!!”


목청껏 외치고 너덜너덜해진 정신으로 정리하는데, 초록손 그대로인 그 녀석도 힘없어 보인다.


‘무엇을’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중요하다 했다. 8살은 그럴 수밖에 없고 그런 경험에서 배운다는 걸 아는데도 어른답지 못했다.


손등에 달라붙던 물감의 끈적이는 감촉과 색이 모일 때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날 밤 녀석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말 안 들어서’라고 정당화시켜 보다가


말 안 듣는 8살 걱정보다
아이들은 언제나
날 바라본다는 걸 걱정해야지’


라고 날 혼냈다.


다음날 사과했더니 괜찮다며 안기는 녀석을 보고 내가 더 못나졌다. 월요일 미술을 준비하는 주말, 또 다짐하면서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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