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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에타 Jan 06. 2021

엄마는 도토리를 주우러 다녀올게

도토리와 삶의 연관성

 아이가 네살(만 2세)이 되었다. 엄마가 출근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쿨하게 보내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출근' 의 의미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아침에 나간 엄마는 밤이 되어서야 '퇴근'이란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잠이 깬 지 얼마 안된 아이를 잠시 안아주고 친정 엄마에게 보낼 땐 아이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럴 때 우리 가족들은 엄마는 도토리를 주우러 다녀온다고, 아이에게 말한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겨울잠 후에 영양보충을 위해 먹어야 하고, 나중을 위해 묻어두는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도토리는 즉, 생계와 연관된 것이다.


 사무직이 아닌 내게는 나인 투 식스가 아닌, 텐 투 에잇이라고 해야하나. 하루 열 시간. 한달에 여섯 번을 쉰다. 난 '도토리를 줍기 위해'이 시간을 나름대로 견뎌 내고 있다.


 작년 1월 육아휴직 기간이 다 되어 갈 때도 난 직장을 포기하고 어린이집 다니기 전까지만이라도 아이를 직접 키우고자 했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휴직수당이라도 있어서 버티던 나날들이 끝나고, 외벌이인  남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임신 때부터 이직을 반복했다. 수입은 불규칙한데 지출할 데는 많았고 결제일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위장에 탈이 났다. 주말 친정집에 가서 며칠 더 쉬는 것이 처음엔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고 몇 개월이 되어갔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남편의 숨겨둔 빚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지만 앞이 깜깜했다. 남편은 최소한의 구체적 계획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처음엔 나라도 일해서 갚자고 생각했다.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부탁하고, 친정 가까운 데로 이사해서 나는 워킹맘이 되려고 했다. 내가 친정과 이사한 집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하자 남편은 그마저도 이해하지 않았다. 이사 계약은 파기되었고 나는 취직을 했다.


 처음엔 하프 타임 근무와 같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퇴근하고 데려올 수 있을 직장을 찾고 싶었다.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난 친정의 도움으로 풀타임 근무가 가능했다. 홀로서기를 위한 첫 시작이었다. 어느새 별거가 되어버렸다. 격주 주말 정도로 아이 아빠는 아이를 데리러 왔다. 이후 몇 번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남는 건 상처뿐이었다. 따로 사는 동안 아이 아빠는 불규칙적인 '소정의 양육비라는 명목으로 30만원 가량을 주었다. 아이 두유와 기저귀를 사고 나니 남는 게 없었고 난 생활을 이어 나가야만 했다.


 워킹맘 생활을 한 지 반년이 넘어간다. 이제 내 힘으로 아이의 두유와 기저귀를 사줄 수 있다. 아이가 냉장고 앞에서 주문처럼 빵, 옥수수, 포도 , 브로콜리 등을 말하면 대령?할 수 있게 되었다. 친정 엄마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월 초에 아이의 두유를 쟁여두는 날이면 도토리를 묻어놓은 다람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이에게 오늘도 말한다.

엄마 도토리 주우러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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