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엄마, 조은수 글, 안태형 그림
세상에는 엄마가 아주 많단다.
“펭귄 엄마는 비바람도, 눈보라도 얼씬 못하게 품어 주는 엄마이고, 타조 엄마는 낳아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는 엄마, 먹이도 가슴살도 피까지도 다 내주는 펠리컨 엄마도 있다. “
“하지만 악어 엄마는 달라.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 뿐.
눈을 떼지도, 아주 눈을 감지도 않지 “
엄마라는 이름의 책임과 무게, 사랑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소용돌이친다. 여러 매체에서 그려지는 엄마의 모습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맞서 싸우는 모성애가 대표적이다. 나도 엄마가 되긴 했는데, 아직
무거운 그 타이틀에 걸맞은 엄마인지는 잘 모르겠다.
워킹맘에 싱글맘인 나는, 완전히 내가 사랑하는 자식 옆에 24시간 붙어있을 수가 없다.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각자의 시간이 존재하고, 어느 방향을 제시해 줄 순 있지만 모든 걸 강요할 수도. 지켜볼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6살의 딸은 벌써 나름의 어린이집 라이프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때로는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생각대로 안되기도 하는 위기를 겪으면서 말이다.
악어 엄마는 아기 악어들이 수영할 수 있게 물가로 밀어 넣어주고, 물고기와 잠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자 미련 없이 떠나며 자식들에게 ‘너의 짝을 찾으렴’하고는 떠난다. 나조차도 책을 읽으며 정말 이렇게 쿨하게 떠난다고? 하면서 앞뒤면을 다시 펼쳐보기도 했다.
악어 엄마는 정말 떠난다.
동물 생태계에서는 많이 봐온 클리셰? 일 수도 있겠지만 동화책인데 나름 충격적이었다. 옛 속담에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데,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르지 싶다.
전에 오은영 박사님 말로는 결국 아이들을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라는 비슷한 말을 의미 있게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거창한 엄마는 자신이 없다. 그냥 요즘은 경계를
알려주고 있다. 기본적인 규칙이라던가. 어린이집 가방이 무거워도 아이가 직접 메도록 한다. 그건 아이가 감당할 몫이다. 아이가 슬퍼하거나 속상해할 때도 그 마음은 공감해 주지만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소화하도록 기다려준 뒤, 그럴 땐 어떻게 할지 아이에게 묻는다.
나도 엄마로서 응석받이 엄마는 안 하려고, 나름의
중립과 거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그래도 하루하루 사랑한다고, 출근 전 안아주는 건 잊지 않는다.
어설픈 엄마지만 이런 엄마도 사랑해 주고, 믿어주는 내 딸이 반대로 더 고마울 때가 사실 더 많다.
아이가 자라는 때는, 좀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그 순간, 어설프지만 온전히 자신이 해낸 순간들이 모여 아이는 자라난다.
무조건 해주는 것보다, 아이가 직접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사실 더 힘들지만 해보려 한다.
내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마음이 좀 단단해서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내면의 기운으로 극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