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어렵지만 기준은 필요하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평일에 ‘쉬는 날’인 엄마와 뭔가 특별한 시간을 보낼 것이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처음엔 기분이 좋았다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감으로 변해서 떼? 가 늘어나는 느낌이다.
뭔가 의미 있는 놀이를 위해 처음엔 자기 주도 이유식 만들어줄 때 썼던 요리책에서 먹고 싶은 걸 골라보기 놀이.. 를 하다 결국 비교적 간단한 딸기요구르트머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6세 아이와의 요리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이는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것이 설레서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어 한다. 그건 ‘내가 내가 내가’를 한 백번쯤 들으며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인내심테스트... 후하)
재료가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대략적인 계량?을 해주고 신나게 딸기 으깨서 섞기를 열정적으로 하는 아이는 굉장히 신나 있었다.(잔해는 남지만) 실리콘 머핀틀에 반죽을 담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에어프라이어에 본인 손으로 넣어보고 싶은 거다. 자그마치 160도 내외의 온도로 돌아가고 있는 기계에 말이다. 오븐 장갑을 끼고 싶어 했지만, 찰랑이는 실리콘 틀을 에프에 꽉 차게 가까스로 넣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결국 에프에 머핀틀을 넣는 걸 아이 손으로 하지 못하게 했더니 아이는 문을 쾅 닫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시간 분배상 주 양육자에 가까운 외할머니, 우리 어머니는 저 버르장머리를 두고 보다간 누구처럼...(자기 기분대로 안되면 덜컥 화부터 내는 전남편, 아이아빠) 그르친다며 훈육이 필요하다 말씀하셨고, 결국 아이와 대면 훈육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갔어야 하나, 마음은 아프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꿎은 에어프라이어만 닦았다. 아이의 감정이 사그라들 때까지 난 기다려주는 편이었는데 그게 자칫하면 나쁜 버릇이 들까 봐 그 부분에 항상 육아방식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할머니에게 혼나고도 나중에 왜 그랬는지 따뜻하게 타일러 주자, 아이는 할머니 잘못했어요.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더 많이 자라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혼내는 것이 자신을 미워함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새삼 내가 좀 더 단호해져야겠다는, 좀 더 단단한 신뢰를 가진 엄마로 거듭나야겠다고 생각한다.(아직 난 한참 멀었다고도..)
어쨌든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고뇌의 시간과 반짝이는 에프가 몇 분 안 남았을 그 시점에 문이 열리고 아이는 눈물 맺힌 눈으로 울다 웃으며 나에게 안겨들었다. 나는 이제 기분이 나쁜 건 알겠지만 문을 쾅 닫는 건 나쁜 행동이니 하지 말자고 다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지금 형성되는 아이의 인성이 평생을 간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목욕 후에 눈물 젖은 빵, 아니 딸기 요구르트머핀을 반쯤 먹은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육아를 하다 보면 주양육자 사이에 선한 역할과 악? 한 역할이 나눠지기도 하는데, 나는 맨날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싫은 소리를 완전히 안 할 수는 없어서 항상 예쁜 말로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도 부모로서 단호해져야 할 순간들은 자주 찾아온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항상 고민하지만, 자칫 오냐오냐로 버릇없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사람으로 자라날까 봐 그게 유난히 두렵게 느껴졌다.
어쨌든 아이는 오늘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단호하게 배운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좀 더 나은 부모로서의 고민을 하고 또 다짐한다. 아이를 평생 지켜줄 순 없기에, 언젠가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미래가 여섯 살 아이의 어깨에 짊어져 있다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를 통해 나도 더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 하루하루 나조차도 엄마로 아직 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