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반대편에 있는 나에 대한 의식
나는 나의 존재를 의식한다. 그것은 분명히 나라고 확신한다.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건 분명 나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고, 구체적 국적은 모르지만 아마 미국인 같다. 꽤 유명한 글을 쓰는 작가다. 사람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좀 까다롭고 대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나에겐 한 아이가 있다. 딸인지 아들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익히지 않은 붉은 고기(미디엄레어?)는 먹을 수 없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완전히 익힌 소고기는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아이의 건강을 거의 ‘강박적’으로 신경 쓰고 있다. 인류의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먹을거리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를 생각한다. 어쩌다 이렇게 ‘고기’ 중심의 시대가 온 건지.
몸에서 신호가 온다. 가슴의 찌릿함. 익숙한 신호다.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할 때 느껴지던, 젖이 돌 때의 느낌. 지금 이 감각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지만, 꿈속 지구 반대편의 내가 느끼는 건지, 여기 있는 내가 느끼는 건지 헷갈린다. 지구 반대편의 나는 어떤 모습인 걸까. 그쪽에 있는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지금 내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누리는 이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다. 그게 설령 지구, 아니 세상 반대편에 있는 성공한 나라고 해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기적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리’는 이 모든 평범한 하루들이 이토록 감사하다.
오랜만에 아이와 산책을 했다. 어제의 나는 DDP의 야경을 아이와 볼 생각을 했는데, 그 대신 스티로폼 비행기를 들고 놀이터가 있는 공원에 가서 비행기를 날리며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중한 일상이고, 아이는 행복하게 뛰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