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하루에 한 권 !(21일 프로젝트)
2019.09.09 월
이 소설을 풍성하게 읽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의 촉수를 끌어모아야 한다. 아프리카의 바람과 비와 모래를 상상해야 하며, 나이지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떠올려보아야 한다. 우리가 몰랐던 그곳의 꽃과 나무, 그곳만의 풍경을 드러내는 온갖 빛깔의 수목, 공기의 질감, 계절의 촉감, 음식들, 의례와 전통들, 수많은 부족들의 다양한 언어와 관습들을 떠올려야 한다. 또한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대립, 억압적인 질서와 웃음의 대립,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 등 사회역사적 맥락을 더듬으며 영웅이자 신과 같았던 가부장 권력의 몰락과 성장담을 풀어낸 작가의 시선과 필력에 주목해야 한다. 이십 대에 쓴 첫 장편소설이라는데, 이렇게 어마무시한 걸 내놓다니.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에 대한 찬사를 이제야 실감한다. 그녀를 한국에 알렸던 페미니즘 책에서 여성들에게 전하던 메시지가 이 소설 속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생소한 나이지리아의 자연과 문화였다. 그것은 바로 다채로운 소리와 색깔, 촉감이 빚어낸 에너지였다. 보라색 부겐빌레아와 보라색 히비스커스, 빨간 히비스커스. 그 색은 어떤 빛깔일까. 겨울철 사하라 사막 남부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모래바람인 '하마탄'의 먼지 바람과 강렬한 열기는 어떤 걸까. 점성이 있는 작물을 갈아서 익힌 밀가루 반죽 같은 형태의 아프리카 주식 '푸푸'는 어떤 맛일까. 그곳의 신선한 캐슈 열매 맛이 나는 주스 맛은 어떤 걸까. 궁금한 목록들이 늘어만 갔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얼마나 좁은가. 치마만다의 소설을 읽으며 나이지리아의 자연과 문화가 너무 궁금해져서 당장 짐을 싸서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상상만 해도 궁금증에 들썩이는데, 서구 문화에 흠뻑 경도된 주인공 캄빌리의 아버지는 서구문화와 기독교의 세례 속에서 부족의 전통을 이교도적이라고 철저히 배척한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정치적으로 올바른 존경받는 인물일지 몰라도 가족 내에서는 독재자이자 폭군이다.
"공포라는 감정은 익숙했지만 매번 (다른 맛과 색깔을 띠는 것처럼) 전과는 다른 공포를 느꼈다."
나이지리아의 엄격한 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캄빌리에게 아버지는 신적인 존재다. 아버지가 주는 일과표에 맞춰 공부하고 쉬고, 밥을 먹는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시간과 삶을 선택하고 계획할 아무런 힘이 없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가이자 사회사업가이자, 군사 독재에 맞서는 신문의 발행인이자 후원자인 아버지. 캄발리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고 사랑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사회 정의를 위해 애쓰는 아버지를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본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일과표를 지키고 질서의 세계를 따른다. 캄빌리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자 세계의 중심이며 하느님 이상의 존재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캄빌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이교도라는 이유로 멸시하고 배척한다. 하느님에 대한 과도한 사랑, 자신의 전통문화에 대한 배척. 영어로 표상되는 서구 문화에 대한 맹신은 그를 점점 광신도이자 가족 내 독재자로 군림하게 만든다.
계율을 어긴 아이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더럽혀진 영혼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눈물과 함께. 사랑을 담은 눈물과 함께. 익숙한 풍경 아닌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한국의 풍경과도 겹쳐진다. 어른들의 눈물은 아이들의 마음에 죄책감의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실제 몸과 마음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캄빌리와 자자, 어머니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가 사는 은수카에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캄빌리와 자자는 이페오마 고모의 요청으로 은수카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이들은 아버지가 준 일과표를 접어두고, 음식 만드는 법, 정원을 관리하는 법, 달리는 법, 웃는 법, 이보족의 전통 음악 등을 접한다. 고모 가족들의 자유로운 대화와 유연한 사고, 웃음이 선사하는 자유로움을 알게 된다.
자유의 맛, 웃음의 해방감을 알게 된 후, 질서와 규율의 세계로 돌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교도라고 불신했던 괴물 같던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전통의 신실함과 아름다음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았으며, 사촌들의 자유로운 삶 속에서 책임감과 독립심을 보았고, 고모의 웃음과 담대함이 어떻게 자신의 신념과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었는지 보았다. 또한 캄빌리가 흠모하는 아마디 신부가 보여주는 자상함과 쾌활함, 웃음은 아버지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의 세계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으며 독단적인 것인지 보여준다.
결국, 캄빌리는 사촌 아마카가 그린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오빠 자자는 성지 주일 전 영성체를 거부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시는 차에 독을 타서 독살시킨다. 자자는 어머니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어머니 대신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반쯤 정신을 놓는다. 캄빌리는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던 사람이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한편, 이페오마 고모는 정치적 탄압 속에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생계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절망으로 끝맺지 않는다.
"일단 오빠를 은수카에 데려갔다가 이페오마 고모를 만나러 미국에 가는 거예요. 아바에 돌아가면 오렌지 나무도 새로 심고 오빠가 보라색 히비스커스도 심고, 저는 익소라꽃을 심어서 나중에 꿀을 빨아먹을 거예요." 나는 소리 내어 웃고 있다. 내가 팔을 뻗어 어머니 어깨에 두르자 어머니도 내게 몸을 기대며 미소 짓는다.
긴 상처가 남았지만 자자가 은수카의 정원에서 자라는 고모의 보라색 히비스커스 줄기를 자신의 집 마당에 심으며 행복해했던 것처럼,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소설 속에서 이페오마 고모의 동료인 식물학자가 실험적으로 고모의 정원에 심은 것이다. 빨간 히비스커스가 가득 했던 캄빌리의 집에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하나둘 자랄 것이다. 빨간 히비스커스가 그들의 집에서 흩뿌려진 '피'를 떠올리게 한다면, 이제 핏빛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자유를 상징하는 보라색이 천천히 그곳에 봉우리를 틔울 것이다.
+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소설인데, 하루 한 권 읽고 쓰다 보니, 두서없이 일단 기록에 남긴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진득하게 다시 수정하고 덧붙이고 싶은 책.
+ 그날의 책을 읽고 전날 읽었던 책의 서평을 쓰다 보니, 서평이 늦어진다. 늦게 쓰다 보니, 12시를 쉽게 넘기고, 욕심이 나면 더 쓰게 되는데, 새로운 규칙이 필요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