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빌러비드 Beloved>, 토니 모리슨
하루에 한 권!(21일 프로젝트)
2019.09.16 월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여러 번 쉬었다 읽기를 반복했다.
그 날 읽어야 할 '하루에 한 권' 책을 끝내면 계속 이 책을 붙잡고 읽었다.
계속 이 책만 붙잡고 있어도 모자란 느낌이었다.
한 세기 반 전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노예 생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죽인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죽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 꽁꽁 숨겨놓은 과거의 이야기를 말로 설명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언니의 유령인 빌러비드가 덴버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덴버는 언니에게 어머니의 과거를 얘기해주고 어머니의 삶을 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느낀다. 폴 디와 빌러비드의 등장으로 등장인물 모두 자신들의 과거를 하나둘 끄집어내 말을 한다. 말을 한다는 것.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치유의 첫 번째 길이기도 하다. 그것이 비록 부족한 말일 지라도. 절대 표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슬픔과 죄책감에 손발이 묶이고 영혼이 달아날지라도,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다시 말함으로써 미래를 위해 조금씩 전진할 수 있다.
<빌리비드>는 바로 그 고통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그린다. 흑인들의 슬픈 역사를 애도하고, 그 속에서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슬프고 아픈 역사와 기억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사라진다 하더라도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돌아 결국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은 채 망령으로 부활한다. 토니 모리슨은 한 세기 반 전의 기억을 펼쳐내 그녀만의 굿판을 펼친다.
"이제 아무도 내 아기들을 공책에 적거나 줄자로 잴 수 없어."
세서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딸을 죽이고, 그 딸은 유령이 되어 124번지에 머문다. 세서의 남편 핼리의 어머니 베이비 석스는 핼리가 밤낮없이 일해 돈을 갚는 조건으로 자유의 몸이 된다. 베이비 석스가 자유의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이 손은 내 거야. 내 손이야."
"제 심장이 뛰어요."
이 당연한 얘기가 백인들의 노예였던 시절, 흑인들에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평생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실로 놀라운 자유의 감각이었다.
그 후 베이비 석스는 흑인들을 대상으로 그만의 종교 집회를 열고, 기꺼이 그의 심장을 나눠주며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녀는 삶을 정화한다든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땅의 축복받은 존재라든가, 세상을 물려받을 온유한 존재라든가, 영광을 누릴 순결한 존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은 오직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은총뿐이라고 말했다. 은총을 볼 수 없다면 누릴 수도 없다고.
여기, 바로 여기에 우리 몸이 있습니다. 웃고 우는 몸. 맨발로 풀밭에서 춤을 추는 몸. 이 몸을 사랑하세요. 열심히 사랑하세요. 저기 저들은 여러분의 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몸을 경멸합니다. 여러분의 눈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장 뽑고 싶어 하지요..... 여러분의 손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십시오. ... 여러분이 사랑해줘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베이비 석스의 연설에 많은 흑인들이 웃고 춤추고 통곡했다. 그것이야말로 종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다. 자신의 심장 박동을 사랑하고, 손을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는 것.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누군가 우리의 몸을 경멸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사랑해줘야 한다고. 쓰다듬어줘야 한다고.
우리의 심장박동과 박동하는 심장을 사랑하십시오. 눈이나 발보다 더욱더 사랑하십니다. .. 여러분의 심장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받은 상이니까요.
심장박동과 박동하는 심장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유를 사랑한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그 감각을 놓치지 않을 때, 우리의 심장은 뛰고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유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
세서에게 미래는 과거의 접근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녀와 덴버가 살고 있다고 받는 ' 더 나은 삶'이란 단순히 과거의 삶이 아닌 삶이었다.
과거의 유령이 집안에서 난리를 치고 두 아들이 집을 떠나도 세서는 한이 서린 124번지에 머문다. 그 속에서 과거의 유령과 함께 살아간다. 과거를 밀봉한 채, 유령의 존재를 견딘다. 124번지는 세서가 처음으로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장소이자 첫 딸이 죽은 곳이었기 때문에 유령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간다.
억울하게 죽어서 배회하는 외로운 원귀는 폴 디의 출현으로 집에서 쫓겨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세서와 덴버, 폴디 앞에 다시 나타난다. 과거의 망령이 빌러비드란 이름으로 되돌아온 것.
폴디가 집에서 내쫓기고 세서의 외로운 막내딸 덴버는 빌러비드에 집착한다. 덴버는 빌러비드가 죽은 자신의 언니라고 확신하고, 세서 역시 폴 디가 떠나 후 빌러비드가 자신의 죽은 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후 세서, 빌러비드, 덴버는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스케이트 신발을 양쪽 다 신은 빌러비드와 한쪽만 신은 덴버, 그냥 신발을 신은 세서가 얼음 위에 선다. 위태롭게 얼음 위에 서서 주춤주춤 스케이트를 탄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며 오래오래 빙글빙글 돌며 실컷 웃는다. 과거의 망령 빌러비드, 과거의 빗장을 열은 세서, 미래의 빗장을 열 덴버는 그렇게 서로 손을 잡고 돌고 돌았다.
얼음 위의 장면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서로 균형을 맞춰주며 손을 놓지 않는 것. 그게 어쩌면 해원의 첫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빌러비드와 세서는 그 균형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빌러비드의 분노는 멈추지 않고, 세서의 죄책감은 커진다. 세서는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빌러비드에게 그때 자신의 행동을 이해시키는 데 골몰한다. 그렇게 세 명의 여성들은 과거에 억눌린 채 124번지에 갇힌다. 그 갇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덴버다. 덴버는 언니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문을 열어 걸어나간다. 용기 있게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덴버의 한걸음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고, 동네 사람들은 힘을 모아 124번지의 유령을 물리치기 위해 기도를 올린다. 바로 그때 덴버에게 일자리를 주고 도와줄 백인이 124번지에 도착한다. 상황을 모르는 세서는 자신의 딸을 죽여야했던 그때 그 상황을 떠올리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인에게 송곳을 든다.
그 순간 빌러비드는 사라진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딸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던 세서는 다른 선택을 한다. 백인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백인과 싸우기 위해 칼을 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한 뼘 나아간 미래의 희망을 본다. 미래를 넘겨짚지 말 것.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울 것.
여전히 유령이 124번지 주변을 배회할지라도, 폴디의 말처럼.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 내일로 가기 위해서 세서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베이비 석스가 사람들에게 숲에서 포교했던 얘기가 다시 반복된다.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당신의 심장과 심장박동을 사랑하라고.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과거와 마주하더라도,
당신이 당신의 보배이며, 당신의 손과 발, 심장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덴버가 마을로 한 발 발을 뗀 것처럼,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보라고.
베이비 석스가 열었던 숲의 집회가 다시 열리기를.
모두 모두 함께 웃고 울고 춤을 출 수 있기를.
그렇게 서로서로 의지하며 자신을 사랑하며 한발 한발 살아가기를.
한때 사랑 받았던 빌러비드. 부디 평안히 눈을 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