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를 배우는 시간

<계절에 따라 산다>, 모리사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티라미수

by 차티 Chati

차를 우리고 마시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다.


차 맛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차를 따르는 소리, 찻잔의 촉감, 공기의 온도, 그날의 날씨 등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아, 이 순간만은 정성을 다하고 있구나.' 괜히 뿌듯하고 벅찬 마음까지 든다. 차 한 잔에 마음의 술렁임도 머릿속의 속삭임도 잠잠해진다.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느낌까지 드니, 차 한 잔이 주는 선물이 너무 크다.


모리시타 노리코는 <매일매일 좋은 날>(영화 일일시호일 원작)에 이어 다도를 배우는 시간을 이어간다. 이번엔 계절에 따라 차를 마시고 계절 안에서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담담히 기록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따뜻함. ⠀

누구나 좌절하고 일이 나아가지 않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늘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는 자잘한 고갯길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럴 때마다 작가는 다도를 배우며 계절의 흐름 속에 머무는 법을 배운다. 가마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올 때마다 솔바람을 떠올리며 고요함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절마다 다른 글귀가 쓰인 다실의 족자와 다화를 보며 저마다 자기 빛깔로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에 감동한다. 아, 그리고, 다양한 계절과 자연을 축약한 다식은 또 얼마나 멋지고 맛있어 보이던지.

다도를 모른다 해도, 비싼 차와 도구가 없다 해도 다도를 배우는 이의 순간순간을 따라가다보면 마음의 평화와 계절의 변화가 한결 가깝게 숨 쉰다.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차 한 잔의 평화와 계절의 흐름이 전해지는 책.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신비로운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오늘은 오늘 감동한 것만으로도 좋은 법이니까." 수많은 존재 중에서 내가 감동한 것, 내가 만나기로 선택한 것만 가지고 돌아간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매일 감동할 순간을 더 많이 채운다면, 일상의 고민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비가 올 때면, "빗속에 갇힌 채 지켜지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겨울날에도 바랜 잎으로 근사한 예술을 만들어내고,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그러다 보면, 작가의 말처럼 인생의 기술이 아니라 길을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겠지.

"아무것도 안 될 때는 그냥 지구에 붙들여 있으면 되는 거야."


“아무것도 안 될 때는 그냥 지구에 붙들려 있으면 되는 거야. 지구는 굉장한 기세로 돌고 있다고. 그러니 제대로 지구에 잡혀 있지 않으면 날려가 버리고 말아.”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자신을 계속 다그치며 탓하는 건 그만두자.....
지칠 때는 계절 안에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딘가로 떠나지 않더라도 이 나라에서는 계절이 돌고 돈다.
십 대 소녀였을 때, 나에게 계절이란 배경으로 흐르는 단순한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계절의 순환 같은 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가능하다면 일 년 내내 일정하게 쾌적한 온도 속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계절을 앞질러 나아갈 수도, 같은 계절에 계속 머물 수도 없다. 언제나 계절과 함께 변화하며, 한순간의 빛이나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마음을 가다듬고, 쏟아지는 빗소리에 몸을 맡기며 자신을 치유하기도 한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일도 있고, 마음속으로 결심했을 때 바람이 ‘그래!’ 하고 대답해 준 적도 있다.
우리는 계절의 순환 밖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안에 있다. 그러니 지칠 때는 흐름 속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되는 것이다. (132~13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딸의 역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