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감나무의 꿈

인터뷰 열아홉

by 홍작

2017년 8월 30일


“나무를 좋아하니까.
자연과 사람들에게 나무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습니다.”


열아홉님은 마흔 후반의 남성분입니다. 나무를 좋아해서 숲해설가가 되었데요. 지금은 동네 탐방을 하며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는 곳의 나무 이름을 알게 해 주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나무 이름을 알려주는 게 꿈이라는 이 남자. 어째 꿈이 너무 소박해 보입니다.

대부분 저 나이 또래의 중년 남자들은 어떻게 하면 은퇴 후에도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거든요. 차라리 땅을 사서 좋아하는 나무를 많이 심고 싶습니다, 고 했으면 이해가 갈 거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알려준다니. 나무 이름을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동네에 함께 사는 나무 이름을 알게 되면 비로소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데요.

삶의 뿌리라. 하긴 인터뷰 당시 저 역시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삶은 제 손이 닿지 않는 5센티 밖의 세상이었어요. 제가 원해 손을 뻗을수록 더 멀어져 가는 것이었죠. 그런데 나무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삶의 뿌리를 알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열아홉님의 말을 다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해합니다. '이 사람이구나' 싶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일상을 함께 하면서 자연이 좋아지더라고요. 꽃이 좋고, 나무가 좋아지더라고요. 맞아요. 제게 뭔가 변화가 온 거예요. 좋아하려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져요. 좋아지니 이름을 알고 싶고, 사진을 찍어 담고 싶어 지더라고요. 원래 산골 소녀여서 그런가 보다 했죠. 제 고향이 정선이거든요.

그런데 오늘 열아홉님의 인터뷰를 다시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제 삶에도 뿌리가 자라고 있다는 걸요. 나무 이름뿐만 아니라 언제 꽃을 피는지도 알게 되었거든요. 그땐 상상도 못 한 걸 지금 알게 되다니 글초상화를 다시 정리한 보람이 있네요. 그리고 열아홉님의 꿈이 결코 소박하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나무 이름을 알려주는 것으로 일상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건 우주를 바꾸는 일처럼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건 마치 새로운 우주를 선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4년이 흐른 후에야 깨닫습니다. 조만간 열아홉님을 만나봐야겠어요. 이런. 서론이 길었습니다. 열아홉님을 만나러 가시죠. :)


열아홉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3이라고 하셨어요. 안정적인 느낌이라 좋데요. 둘보다는 셋이라서 좋다고. 좋아하는 색깔은 노랑이랑 분홍이래요. 그러고 보니 열아홉님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오셨어요. 다수의 남자분들이 꺼려하시는 색깔의 옷인데 너무나 당당하게 입고 계셔서 분홍색인지 모를 정도였죠. 밝아서 좋데요. 무엇보다 분홍색을 입으면 좋은 일이 생긴데요. 오늘도 좋은 일이 생겼는데 글초상화를 만난 것이라고 했어요.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분이죠?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이래요. 음식점에서 파는 비빔밥이 아니라 고향집에서 자주 비벼 먹던 비빔밥이 좋데요. 고향이 경상도 구미인데. 어머니가 무쳐주신 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슥슥 비벼 먹으면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고 하네요.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향을 밝히는 분이 없는데, 고향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확실히 뿌리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 동물은 민물고기래요. 각시붕어나 모래무지 같은 녀석을 좋아한데요. 일급수에만 사는 녀석들인데 이젠 볼 수 없어 아쉽다고. 좋아하는 식물은 감나무래요. 노란 감꽃이 떨어질 때 가장 아름답데요. 그리고 이상하게 감나무 하면 고향생각이 난데요. 어머니 생각이 나고. 어머니 주름이 생각나고. 그래서 감나무는 그리움이랍니다. 찾았습니다. 열아홉님의 진짜 모습.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열아홉님의 진짜 모습입니다.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으니 특별한 계획은 없데요. 나무를 좋아하니 나무를 통해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열아홉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일단 나무를 좋아한다고 했고, 고향 이야기도 많이 하셨고, 모래무지에 대해 이야기할 땐 너무 즐거워 보였죠. 무엇보다 분홍색. 분홍색에 대해 말할 때 눈이 빛났습니다. 하여 고향, 감나무, 분홍, 모래무지를 키워드로 삼고 글초상화를 써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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