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물
2017년 8월 30일
“학교에선 정답이 하나였는데.
세상에 나오니 답이 하나가 아니더라고요.”
스물님은 이십 대 중반의 대학생입니다. 연극영화과 학생인데 연기와 연출을 전공한다고 해요. 연기와 연출 중 무엇에 더 끌리냐고 했더니 연기가 더 끌린다고.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네요. 이 시간에 학교는 안 가고 도서관은 왜 왔냐고 묻자, 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세상을 배우고 있다며 당차게 대답합니다. 와우. 세상을 배우다니. 배우들은 말도 참 잘하죠. 왜 휴학을 했느냐 묻고 싶었는데 꼰대 같아 참았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공통의 질문을 시작하려고 했죠.
그런데 스물님이 스스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마도 저처럼 물었던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가 봐요. ㅠ 연기를 한다는 사실에 너무 설레 대학교에 갔는데. 이상하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신선함이 사라지더래요. 그래서 잠시 쉬어가는 중이랍니다. 지금은 알바를 하면서 다시 연기 공부를 하는데 예전과는 달리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해요. 아마도 학교에선 정답이 하나였는데 세상에 나오니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능하게 된 것 같데요.
확실히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자신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어요. 자신의 쉬어 감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마치 계절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해요. 이런 점이 부러웠어요. 제 이십 대는 휴학은 꿈도 못 꿨어요. 학교를 중간에서 그만두는 건 나쁜 거라 생각했거든요. 뭔가 모자란 사람이 하는 것?이라 여겼어요. 그리고 세상 공부는 세상에 나와서 하는 거라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잘 따르는 고리타분한 모범생이었어요. 그래서 늦게 세상 공부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유독 길어진 인터뷰를 통해 제가 느낀 건 스물님은 학교의 답도 아닌, 세상의 답도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하여 더 궁금해졌습니다. 스물님이 어떤 분일지.
스물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었더니 2가 좋데요. 승리의 V를 그릴 때도 좋고. 잠깐만요. 잠깐만요. 승리의 V를 그리는 것과 숫자 2를 좋아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죠? 스물님의 말을 잠시 끊었습니다. 그랬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펴 승리의 V를 그립니다. 아, 손가락이 두 개.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같은 숫자 2를 좋아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이유가 사람들마다 다 달라요. 세상의 답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요. 매번 만나는 일이지만 매번 신기합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자신의 번호가 22번이었데요. 중학교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연거푸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인 것 같아 2가 좋아지게 되었다고 해요. 숫자 2는 스물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같네요. 이런 걸 숫자 2가 내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이 많데요. 기간별로 다 다르데요. 다 이야기해달라고 했죠. 봄에는 초록, 여름에는 파랑, 가을에는 노랑, 겨울에는 하얀색이 좋데요. 초록은 상큼하고, 파랑은 상쾌하고, 노랑은 기분 좋고, 하얀색은 떠나고 싶어 좋아한답니다. 특히 겨울을 좋아하는 데 눈 덮인 강원도를 보면 무작정 떠나고 싶다고 합네요. 짧은 제 질문이 부끄러워 질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건 자신을 잘 알고, 자신 안에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겠죠?
좋아하는 음식은 없데요. 하지만 좋아하는 맛은 있데요. 단 것을 좋아하는 데. 그중에서 초콜릿을 가장 좋아하고, 파프리카의 단 맛을 좋아하고, 자연의 단 맛을 좋아한데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정확히 이야기하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하지만 고민이 깊어갔습니다. 이 많은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을 부각해야 하나, 솔직해 보이는 이 분의 진짜 진짜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연기가 전공이라고 했는데 지금 이 모습은 연기가 아니겠지. 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좋아하는 식물은 선인장이랑, 동백이래요. 키우기 쉬워서 좋데요. 관심을 주지 않아도 꽃을 피우기 때문이랍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좋아하는 데 관심은 주지 않는다고요? 어떻게 좋아하는 데 관심을 안 줄 수 있죠? 스물님의 말을 다시 끊었습니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스물님의 진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스물님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우선순위가 있으니까요. 좋아한다고 다 관심을 줄 순 없잖아요. 하긴 맞습니다. 선택과 집중. 지금 제게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동물을 물으니 새가 좋데요. 그중에서도 앵무새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실은 집에서 키우고 있다고 해요. 앵무새가 자신만 바라보는 느낌이라 사랑스럽다고 합니다. '자신만 바라보는 느낌'이라는 대목에서 느꼈습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켜진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자신만 바라보는 느낌을 좋아한다니. 스물님은 천생 배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0년 후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배우가 되고 싶데요.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스타가 아닌 오래 남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데요.
어떤가요? 스물님의 초상화가 그려지시나요? 과유불급이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글초상화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물님이 열정적이고, 자기 성찰이 가능하다는 건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했습니다. 아니 너무 솔직해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셨죠. 스물님의 다양한 모습은 그 솔직함, 그 투명함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 순간 프리즘이 떠올랐어요. 빛을 투과해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를 만드는 프리즘이요. 스물님은 빛을 투과하면 다양한 색을 내는 프리즘을 닮았어요.
1부는 여기서 마칩니다. 곧 2부로 돌아오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