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요법이 좋아? 호르몬요법이 좋아?

내가 더 좋아!

by 홍작

01. 두 갈래의 길


오늘도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을지 모른다.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이목구비인데, 문득 거울 속 여자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예고 없이 울컥 솟구치는 열감에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밤새 축축해진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선잠을 깨는 일이 잦아졌다면, 맞다. 우리는 지금 인생의 가장 예민한 환절기, ‘갱년기’라는 터널에 진입한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한숨부터 나오는 그 냉혹한 계절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갱년기’라는 세 글자를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나는 아닐 거야, 아직은 아닐 거야.’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붉어지는 얼굴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 혼란스러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갈 방법을.


그 길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엄마의 엄마, 그 이전부터 내려온 지혜에 기대는 ‘민간요법’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는 ‘호르몬 치료’의 길이다. 오늘은 이 두 갈래 길 앞에서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방법은 각각 뚜렷한 장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02. 길 하나, 다정하고 익숙한 위로 – 민간요법


우리에게 민간요법은 참 익숙하다. 오랜만에 찾은 단골 미용실에서 요새 도통 잠을 잘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보자기를 뒤집어 쓴 채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자신만의 비기를 하나씩 꺼내 놓으신다. 달맞이꽃 기름이 좋다는 둥, 치자씨를 볶아 먹으라는 둥. 그 분들의 비기를 다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그 마음만으로도 따듯해지고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갱년기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날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도 바로 이 민간요법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콩이나 석류, 칡을 들 수 있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풍부해서 우리 몸에서 빠져나가는 여성호르몬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준다고 한다. 검은콩을 밥에 넣어 먹거나, 석류즙을 꼬박꼬박 챙겨 마시고, 쌉싸름한 칡차를 마시며 화끈거리는 열을 달래는 시간.


이 시간들은 분명 의미가 있다.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나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내 몸을 스스로 돌보고 있다는 뿌듯함을 주며, 자연의 힘으로 이 시기를 건너보겠다는 강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적극적인 행위가 몸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마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즉 치료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콩이며 석류며 열심히 챙겨 먹어도, 밤새 땀에 흠뻑 젖어 깨기 일쑤고, 사소한 일에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민간요법은 분명 위로가 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갱년기 증상을 막아주는 견고한 방파제가 되기엔 아쉬울 때가 많다. 즉 민간요법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의학적으로 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때문에 명확한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03. 길 둘,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 – 호르몬 치료


그래서 우리는 다른 길을 기웃거리게 된다. 바로 ‘호르몬 대체 요법(HRT)’이라 불리는 호르몬 치료다. 이 길은 아주 명쾌하다. 부족해진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외부에서 직접 보충해주는 것이다. 안면홍조, 수면장애, 질 건조증, 감정 기복 같은 대부분의 갱년기 증상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좋아진다. 마치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나 역시 호르몬 치료의 도움을 받았다.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불면증이 사라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덮치던 열감이 잦아들었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삶의 질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경험이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생각, 잃어버렸던 내 일상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골다공증 예방 효과는 덤이다.


하지만 이 길에는 ‘두려움’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바로 ‘암’에 대한 공포다. 과거에 호르몬 치료가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암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용량과 종류를 조절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그 위험을 크게 낮췄다고 한다. 의사들은 얻는 이득이 실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까지 완벽히 걷어내긴 쉽지 않다. 매일 약을 한 알씩 삼킬 때마다, 내 몸에 인위적인 무언가를 넣고 있다는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03.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자연스럽지만 더딜 수 있는 길과 빠르지만 약간의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길. 정답은 없다. 그러니 굳이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마라.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대추차 한 잔이 최고의 처방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알의 호르몬제가 구원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남들이 가는 길, 방송에서 좋다는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길을 내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a. 내 몸의 데이터 정확히 알기 : 전문 병원을 찾아 의사와 충분히 상담해야 한다. 막연한 공포 대신 내 호르몬 수치와 건강 상태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하는 것이 시작이다. 또한 치료법의 득과 실에 대해 의사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어야 한다. 호르몬 치료가 나에게 위험한지, 위험하다면 어느 정도인지, 민간요법을 병행해도 되는지.


b. 유연하게 병행하기 :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식습관을 개선해도 되고, 자연요법을 시도하다가 힘들면 언제든 의학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c. 과정임을 기억하기: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건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호르몬제는 평생 먹는 약이 아니라, 내가 이 거친 파도를 넘을 때 잠시 빌려 타는 서핑보드라고 생각하자. 간혹 거센 파도에 균형을 잡지 못 하고 서핑보드가 뒤집힐 때도 있을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라. 내 서핑보드만 뒤집힌 것이 아니다. 모두 뒤집힌 서핑보드를 잡고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마도 언젠가 또 뒤집어 질 것이다. 괜찮다. 이미 우리는 실패를 경험했고 그만큼 경험이 쌓였다. 그러니 또 시작하자.


갱년기는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하는 형벌의 시간이 아니다. 50년 가까이 쉼 없이 달려온 내 몸을 돌아보고, "그동안 애썼다" 다독여주며, 앞으로의 50년을 어떻게 더 건강하고 즐겁게 채워나갈지 고민하는 ‘나를 위한 리브랜딩(Re-branding) 시간’이다.


호르몬이냐, 민간요법이냐. 그 방법론보다 중요한 건 그 중심에 서 있는 ‘나 자신’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도, 조급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맞는 방법을 신중하게 선택해 이 시간을 잘 건너가면 된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고, 생활하느나 바빠 나만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이 없었다면 이제부터 생각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오늘 더 지혜롭고, 단단해진 내가 될 거라고 믿는 자세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삶을 스스로 리브랜딩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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