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영상 12도. 비가 조용히 내린다.
고개를 떨구는 저이의 모습이 흡사 갈대 줄기와 같다. 더는 가눌 힘 없어 이삭처럼 사그라드는 저 고개. 어디로부터 오는지 모를 바람 속에 휘청이는 갈대꽃처럼 나부끼는 저 파리하고 창백한 얼굴. 저 얼굴이 사람의 형상인가. 가시나무로부터 흐르는 붉다 못해 검은 혈, 그 낯이 참으로 불쌍하다. 그러나 험한 육신의 고통보다 더욱 사나운 것, 시퍼런 조롱의 칼날이 그의 폐부를 찌르는 것인가. 눈물인지 역혈인지 모를 것이 그 발 아래로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어떠한 죄를 지었는가. 높은 나무에 달린 저 사람, 참으로 가엽다.
통곡과 조소가 섞갈린 괴이한 괴성이 성난 들풀처럼 지면을 덮는다. 파괴와 두려움 사이, 저기 저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인가. 저이가 누구이기에 저편에 있는 자는 천지가 원통한 듯 저리도 분을 토해 내고, 이편에 있는 자는 그 발 아래 고요히 서서 흐르는 핏방울 속에 울고 있는가. 나무에 매달린 이, 저이가 참으로 궁금하다.
가만가만 보니 죽었는가. 어떤 이는 죽었다 말하고 어떤 이는 살았다 말한다. 어떤 이 소리친다. ‘왕이여. 네 스스로를 구원하여 보라.’ 그래서 그 육신을 저 높이 매달았는가. 하나 저토록 야윈 왕이 있을까, 저토록 상한 왕이 있을까. 이 많은 이가 그의 상한 발꿈치 아래에 있다. 저이를 나무에 매단 이조차 고개를 들어 저 높은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가 눈을 감았는가, 혹은 죽었는가.
아득한 어둠이 천지를 뒤덮는다. 참담한 어둠이 찰나처럼 당도하자 발 아래 선 모두가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다. 나무에 달린 이가 죽었는가. 다시 날이 밝는다. 그 많던 이가 삽시에 모두 흩어졌다. 나무에 달린 이 내려지고 텅 빈, 열십자 모양의 나무만 언덕 위에 남았다.
아무 말 않는 나무야, 말해 보거라. 네게 달려 있던 이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그가 죽었다면 왜 죽었는가, 그가 살았다면 왜 살아 있는가.
오늘의 추천곡은 박다울의 중모리입니다.
Man은 수난일마다 쓰는 저의 작은 시리즈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Man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