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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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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Apr 04. 2024

con fuoco

10. 영상 17도. 오늘의 날씨는 무엇일까.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깊은 정적 속에 그가 양손을 들자, 모든 것이 살아난다.


  

  교향交響 그 앞에 우중의 선장처럼 서 있는 한 남자, 벌겋게 성난 사람의 분노처럼, 돌풍 속에 매섭게 돌아가는 풍차처럼 손을 가로지르자, 사나운 거인의 웅장한 발소리가 지나간다. 잔파도가 거대한 산처럼 솟구쳐 오른다.

  한밤중 뒤꿈치를 들고 남몰래 걷는 소년처럼, 광대한 기암에도 울지 않는 소년처럼, 심야의 복도를 고뇌로 서성이는 사내처럼, 절벽 끝에 매달린 절박한 사내처럼 한 남자가 교향交響 위에 서 있다. 잠든 아이를 어루만지는 부모의 고달픔과 같이, 신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뒷모습과 같이,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사내의 절규와 같이 두 손이 흔들린다.

  교향交響,  다가오는 맹수의 걸음과 같고 어느 여인의 날카로운 울음과 같은 선율이 모이고 흩어진다. 소녀들의 춤이 현의 끝에서 떨어진다. 처참한 결투와 분노가 심벌즈의 고함에서 깨어져 나온다. 팀파니 위의 격투가 치달아 오르고, 하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녀의 절망이 무덤이 되어 벼랑 끝을 향해 내달린다. 격렬한 낙뢰와 불길의 선율이 좌중을 향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일순, 남자의 양손이 사나운 선율을 사로잡는다.

  천지가 침묵한다.


  황량한 서사의 끝에 서 있는 남자의 손짓이 어린잎을 어루만지는 소년처럼, 수도원의 종을 울리는 성직자처럼 나직하게 흐르며 선율은 사그라지고 마침내 영원히 사라진다.

  막이 내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한 남자, 저편으로 걸어 들어간다.

  

   

  

  


* con fuoco는 '열정적으로, 열렬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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