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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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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Apr 12. 2024

구우 丘隅

11. 영상 16도. 맑고도, 맑다. 

  활자에 갇혀 지내는 사이 봄이 왔다. 만개滿開의 소문을 문간방에서만 듣고 있으니 보통 애가 타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꿈결에서만, 만개한 꽃나무 아래 서 있다. 나는 작은 개미 한 마리 되어, 자간과 행간 거듭 자간과 행간을 바지런히 오가며 화목하게 짝을 맞추고 일향一向으로 단어를 모아 밭을 일군다. 지금은 목전目前의 활자만이 나의 온 세상. 지물紙物 너머 모든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발걸음의 그림자일 뿐이다. 나의 작은 문림文林. 고역과 희락과 꿈. 한 번의 기쁨과 한 번의 슬픔. 


  활자의 숲을 겨우 빠져나와 문간방을 나오니 꽃이 모두 졌다 한다. 내 마음에 피지도 못한 금춘今春의 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창을 열자 푸르른 땅이 서화書畫처럼 걸려 있다. 말없는 객과 같은 청풍이 슬며시 들어온다. 꽃이 피고 졌다 한들 그럼에도 금춘今春, 만개한 세상이다. 



  


봄입니다. 사진은 아주 오래전의 사진입니다. 

오늘의 추천곡은 Belle Chen의 My Deers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마치 숲을 거니는 것 같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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