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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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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Apr 26. 2024

앉아 있다는 것

13. 영상 21도. 어떤 날씨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밤사이 비가 내렸다.

  며칠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 생각했다. 

  

  유일하게 공개되지 않은 01번 글이 있다. 그 글은 내가 이곳에 들어오며 적었던 글이다. 글의 제목은 '나는 왜 쓰는가'였다. 그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글을 쓰며 잦은 실신이 있었다.' 나를 쓰러뜨린 것은 글이었다. 나는 그로 인해 여러모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시간이 흐르며 일상은 점차 회복되었으나 글을 쓰려 하면 통증이 밀려왔다. 더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오로지 회복에 힘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며 그 가운데 깨달은 것은 이제는 나에게 글이 없는 삶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어떠한 글이라도 쓰기 위하여 찾아온 곳이 이곳이었다. 

  01번 글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그렇게 다시 삼십 분씩 혹은 한 시간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으로 모순되게도 글을 쓸 때면 나는 생명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이름 모를 고통이 여전히 간혹 나를 덮친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그때에 내가 소망하는 것은 앉아 있는 것이다. 앉아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생명의 모형과 같다. 01번 마지막 문장의 시작은 이러하다. '글이 나를 죽인다 한들'. 그래도 나는 아마 끝내 쓸 것이다. 만약 내가 더는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오늘의 추천곡은 Jóhann Jóhannsson의 Kangaru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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